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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13. 2022

언제나 멀리 있지 않았던 감사

어느 대학가 동아리실을 방문한 때, 원하는 목표를 위해 달려갈 수 있었음이 감사였단 걸 새삼 깨달은 바 있다. Paul 제공

회사로 들어올 때마다 가뭄에 콩나듯 있는 복리후생을 누려보려고 한다. 직장인이란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존재로 정의하기에 사용하라고 만든 것들을 원 없이 소비해야 하지 않겠나. 이 가운데 내가 애용하는 건 안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이따금씩 경락마사지를 하러 다니시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런 걸 받을까' 싶었는데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야 가치를 깨닫는다. 덧붙여 늙은 소리를 하자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바디프렌즈' '세라젬' 보다 손으로 하는 안마가 최고다.


여하튼 오랜만에 회사로 들어가게 됐고 조금 일찍 출근해 안마를 받았다. 여러 안마사 선생님 중 내게 잘 맞는 분을 찾기란 꽤 어려운 과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적잖은 횟수를 거쳐 단골이 될 만한 분을 찾았다. 이 선생님은 다른 분들과 달라도 달랐다. 늘 깍듯하게 인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안마를 하는 내내 괜찮았는지, 불편한 요소가 해결이 되고 있는지 등 매우 세밀하게 피드백을 해주셨다. 문득 이 일을 시작하기 전 그분의 삶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선뜻 물어보기 어려웠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지만 쉽사리 복기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오늘도 궁금점을 잔뜩 안고 안마를 받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대뜸 "안마 시원하시죠? 제가 사고나고 안마를 시작했는데 여러 곳에서 배웠어요"라는 말을 건네시는 것이 아닌가. 용기를 얻은 나는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나 물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전기가 전공이었는데 운이 좋게 시험에 합격해 통신사에 다녔다고 했다. 이후 삼십대 초반에 사고를 당해 안마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이 "고객들이 아픈 부위를 제 안마로 풀렸다고 말할 때 참 기분이 좋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최근 주말 당직을 하고 있던 오전 시간대에 한 사건이 터진 바 있다. 경찰에 연락을 취해 자초지종을 물어야 했는데 휴대전화를 들기 전부터 갖가지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전화를 잘 받을까부터 시작해 연결이 되면 담당부서 과장이 멘트를 잘 줄까, 타 기사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얻을 수 있을까 등 걱정들이 잇따랐다. 이 귀찮은 과정을 해내고 싶은 의지가 부족하다는 게 피부로 와닿을 땐 '경찰에 따르면'이라는 아주 간단한 문장을 삽입하면 된다.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주말'이란 점도 감안해야 하니까. 마음과는 다르게 내 손은 녹취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있었다. 거북이보다 굼뜬 속도로 말이다.


이 일화뿐만 아니라 근래 나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공기가 돌고 있는 안마실 침대에 누워있는 난 연신 화끈거리는 얼굴을 애써 감추려했다. 삼십대 초반이면 딱 지금 내 나이와 엇비슷해 더 그랬다. 안마사 선생님도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 가운데 큰 사고를 예측했겠는가. 하루에 사소한 일이라도 예상과는 다르게 틀어지면 '예민'이라고 포장한 모든 행동을 쏟아내곤 했다. 어쩌면 안마사 선생님도 그런 시간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를 열심히 탐구해 이 자리까지 오셨단 점이 이른바 '헬요일'을 투덜거리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 '반성'을 말하는 걸 난 썩 좋지 않게 본다. 이런 감정은 대체로 '적어도 내가 당신보다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다만 당연하게 소비하는 하루가 어떤 이에겐 그토록 되찾고 싶은 귀중한 것이란 걸 한번쯤 짚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무언가를 이뤄내야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감사'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면 당연히 좋겠지 생각한다. 그러나 먼저, 이력서에 적는 직업이 대학 시절 바라고 원하던 일이라는 점을 두고 "감사하다" 진심으로 내뱉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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