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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01. 2022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전화부스에 있으면 일단 친절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 교묘하게 기사에 필요한 답을 얻어내는 선배들의 노련함을 엿보게 된다. Paul 제공

과거엔 가족 모두가 탈 수 있는 멋진 차 한대가 있으면 '최고'라 여겼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20살이 되면 입학선물로 자동차를 선물하는 추세가 잇따르며 한 가정에 차가 딱 한대 뿐인 곳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지하주차장은 분명 세대수를 아우르고도 남지만 적잖은 이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말 저녁이 되면 지상주차장 마저 자리가 없는 웃픈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아파트 주차장에는 소리 없는 전쟁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오후 8시쯤이 되는데 요즘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는 때면 지하주차장은 이미 만차가 된다. 차를 갖고 갔다는 건 비를 절대 맞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포한건데 누가 지상주차장에 차를 가져다 두고 우산을 꺼내들고 싶을까. 엊그제도 역시나 자리가 없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충 주차를 한 뒤 집으로 가 쉬면 되지만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는 지하주차장에서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밤새 비를 맞아야 하는 차보다 아주 잠깐 폭우를 뚫어야 하는 내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기다린 지 약 20분쯤 지났을 무렵 나처럼 뒤늦게 퇴근을 한 차가 들어왔다. 누가봐도 자리가 없었던 주차장이었고 차주는 벽 한구석에 차를 주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누군가 공동현관을 나와 주차된 차에 시동을 거는게 아닌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난 시동을 켰지만 벽에 주차하던 차와 같은 라인의 차가 나가는 것이어서 너무나도 보기 좋게 물을 먹었다. 이내 분노를 삼키고 지하주차장 출구로 위치를 바꿨다. 차가 나가는 걸 보자마자 빈 자리로 가겠다는 일종의 전략 수정인 셈이었다. 이후 5분이 채 되기 전에 경차 한대가 출차했고 곧바로 주차에 성공했다. 뒤이어 지하주차장 입구를 들어오는 차량들의 행렬을 보며 '이겼다'는 이상한 쾌재가 터져나왔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겠다는 아들의 문자를 본 부모님과 마주한 건 얼추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결국 주차를 했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그렇다"고 짧게 답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닫혀지는 문 너머로 "저러니 기자를 한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딸려왔다. 해석하자면 그냥 지상에 주차하고 올라와 더 오래 쉬면 되는데 포기를 모르고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사실 기다림을 시작하고 한 15분쯤 지났을 때 '그냥 올라갈까'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늦게 온 차가 주차 자리를 선점하는 걸 보게 됐는데 어찌 굴복(?)할 수 있냐는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고 이같은 결과를 손에 넣었다. 참 별나다.


앞서 비슷한 예시를 들면서 취재할 때 원하는 걸 얻어낸 뒤 전화부스를 나온다는 일화를 전한 바 있다. 별 사람이 다 모인 이 집단 속 나도 평범하진 않다 싶었는데 무언가 말없는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이번주 초로 기억하는데 그날도 전화부스에 들어가 취재를 하고 있었다. 잘 풀리지 않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한숨을 쉬는데 옆방에서 수십분 동안 똑같은 소리가 이어진 것이었다.


어떤 소리였냐면 다름 아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고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영어 멘트였다. 금융권 취재를 진행하던 선배가 취재하고자 하는 외국은행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고 있던 것이다. 30분은 족히 지났을 무렵 마침내 행원으로 추정되는 외국인이 전화를 받았고 취재를 진행하는 선배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예민한 사안에 대해 들어야 할 답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당황한 외국인은 말을 얼버무리더니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선배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는듯 했다. 아마도 속사포로 쏟아낸 방대한 대화 가운데 원하는 답이 나왔나보다 싶었다.


사회부 데스크와 밥을 먹을 때면 종종 걸려온 전화로 어김없이 나누는 대화가 있다. 뻗치기 여부에 관한 것이다. 당장 쇼부(대충 기사에 필요한 무언가)가 나지 않을 때 취하는 전략이다. 꼭 한 장소에서 오래 기다린다는 뜻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쨌든 나와야 하는 답을 얻으려 기자들이 행하는 다양한 모습을 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참 고된 과정이고 이런 내 모습이 싫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자연스레 나오는 걸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에혀  어쩔 수 없구나와 같은 그런 푸념과 인정 사이에 비스무리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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