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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04. 2022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는데

일상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곤 한다. Paul 제공

"벌써 7월이다" 지난 주말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다녀오며 들은 말이었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나 지나갔는데 돌아보니 별다르게 쉰 적이 없었다. 여기서 쉼의 뜻은 모두 다르겠으나 주말이나 평일 휴무를 그다지 특별하게 소비하지 않았단 말이다. 특별함이란 단어 역시 상대적이지만 평일과 별로 다르지 않게 그냥 지나쳐 보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변명으로 내세울 이유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일상을 뒤로하고 떠날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 게 전부였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까지 딱 반년이 남은 셈인데 이러다가 지난 반년처럼 호로록 지나갈 것 같았다. 이에 주말부터 대단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부산이나 제주도로 1박 2일 정도 여행을 떠나려 갖가지 '가능성'을 검토해봤다.


제주도는 시간을 잘 이용하면 왕복 7만원 정도에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차량과 숙소도 각 4만원 선에서 지불하면 됐다. 한참 구체화 작업을 거치고 있을 때 문득 비행기를 타러 김포공항까지 가는 게 두려워졌다. 두렵다기보단 정확하게는 귀찮음이 절반이었다. 굳이 1박을 하러 제주도까지 가야 할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이내 제주도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후 검토에 들어간 두번째 후보지는 부산이었다. 애초에 SRT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하면서 가볼 심산이었다. 낭만있게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아이패드 미니로 책을 읽다가 글을 쓰는 꽤 멋진 계획을 세워봤다.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약 10시간에 달하는 운전이었다. 그럼 기차를 타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부산역에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음에'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1박 2일은 무모한 도전인 것 같아 당일치기로 떠나보려고 했다. 운전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유유자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지도를 열심히 살펴본 끝에 속초란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식당과 카페의 거리도 10분 안쪽이었다. 시간을 보낸 뒤 가족들에게 줄 특산품 따위의 선물도 트렁크에 쟁일 수 있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일단 무조건 떠나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알람을 잇따라 맞췄다. 반드시 출발하겠다는 의지였다.


다음날 아버지의 이른 출근으로 거실이 부산스러웠고 그 덕에 알람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그리곤 안방으로 가 어머니 옆에 누워 "내일 예비군을 가야 하는데 그냥 가지 말까"를 말했다. 제발 가지 말라고 나를 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당연히 어머니는 "그래 무리하지 말고 쉬는 게 낫겠다"는 답을 내주셨다. 합리적인 이유에 대해 공감을 받았으니 늦잠을 자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휴대전화에 맞춰둔 알람을 모두 끄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한 세시간쯤 지났을 무렵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9시반을 넘기고 있었는데 솔직하게 고양이 세수를 마치면 당장 떠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음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짧은 고민을 하는 동안 갈 수 있는 이유보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많이 곱씹어봤다. 그러다 내가 찾아낸 결정적인 이유는 아까 새벽에 나를 다시 침대로 이끌어줬던 "내일 예비군이니까"였다. 왕복 6시간 정도를 운전하고 나면 분명 피곤해서 훈련하는 데 무리가 갈 것이란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앱에 들어가 간단한 점심을 주문했다.


이후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다가 후다닥 씻고 나온 뒤 어느 카페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창밖을 보니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오는 푸르른 바닷가는 보이지 않는다. 퇴근시간이 성큼 다가와 느림보로 줄을 잇는 차들만 빼곡히 보인다. 이번 달의 첫 평일 휴무를 지난 시간처럼 동일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라도 쓰고 있으니 혹자는 부지런하다고 말할 지 모르겠으나 지난주에도 내일도 아마 다음주도 똑같은 모습으로 손에 땀이 나고 있을 것이다. 때 되면 먹는 밥을 특별하다 말하지 않으니까.


아까 팀 단톡방에 이달의 월차를 줄지어 공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내 캘린더엔 다음주 금요일, 그 다음주 금요일이 휴무로 지정돼 있다. 목요일부터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향후 2주간 3일간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과연 나는 이사간 주소를 반영하지 않은 운전면허증을 공항 검역대에서 꺼내고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를 배경 삼아 뜨거운 햇빛 아래 파라솔이 설치된 의자에서 밀리의 서재를 열고 있을까. 만약 그때도 '꽝'이면 어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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