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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15. 2022

뻥 뚫린 바다를 무작정 찾아간 뒤

바다를 정면으로 보면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여름이라 더웠다. Paul 제공

일하면서 여기저기 다녔으니 사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 성격이 문제라면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비스무리한 것으로 주어진 시간을 쪼갤 수 있을 만큼 나눠 ‘선용’하려 했으니 말이다. 이 여파는 비로소 원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해서도 이어졌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 남아있는 두 세시간 정도를 소파에 누워 유튜브 새로고침을 한다는 게 죄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지난 휴무 때 한사코 집에 있으려고 했던 내가 꽤나 한심했었다. 젊음을 즐겨야 한다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 ‘젊을 때’보다 소극적으로 변한 게 썩 달갑지 않았다. 아직 나이 앞 숫자가 3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적’을 언급할 짬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n년차 직장인으로 들어서면 딱히 무슨 종류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가득 들어차지 않나. 이에 대해선  “너도 그래? 나도!”라는 공감을 29살이든 33이든 동일하게 내뱉을 것이다.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글을 쓰고난 뒤 몇일이 지나 이번주가 됐다.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다.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지 여부를 토론하던 가족 중 누군가 대뜸 “Paul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을 꺼냈다. 설명하자면 가족들과 다녀온 해외여행의 비행기, 숙소, 일정 등은 모두 내가 처리했다. 언젠가 다녀오리라 말만 쌓아가는 것 같아 부모님께 가용가능한 경비를 물은 후 얻어낸 결과였다. 베트남, 일본 등을 잇따라 추억하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하사한 칭찬 엇비슷한 것이었다.


저 말을 듣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부산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지인들에 연락해 만나자는 일정을 줄지어 잡았다. 또 휴무가 되면 ’다음에‘를 꺼낼 것 같아 그런 나를 이겨보리라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해보였다. 다짐을 없는 것으로 돌리기에 여지가 남아있었단 뜻이다. 취소하지 않고 부산에 도달하는 건 돈을 쓰는 것이고 여행 하루 전 새벽 1시쯤 SRT 티켓을 끊었다. 원래 자가용을 이용해 갈 생각이었는데 출퇴근의 서너시간과 부산 왕복은 좀 다르다는 걸 티켓을 구매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무렵 함께 깨달았다. 이렇게 준비는 완료됐다.


부산이 특별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친인척이 살고 있고 부모님 역시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고 직장생활도 이곳에서 하신 바 있다. 이때문에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익숙한 곳에서의 솔로 투어 계획은 어려웠다. 더욱이 서울에서도 이제 잘 타지 않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곳곳을 다녀야 하는 점도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관광지를 가고 싶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멀리 부산까지 내려와 쇼핑몰에서 옷을 잔뜩 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골똘히 고민하며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을 통해 환기를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려 했다.


배터리가 나간줄 모르고 무더운 부산에서 한 손에 이 삼성 뭐시기를 들고 다닌 난 뭘까. Paul 제공

고민을 마친 뒤 부산으로 가져갈 백팩에 노트북을 챙겼다. 놀러가면서 도대체 노트북이 뭐냐 싶겠지만 그냥 특별한 것 없이 일상에서 해오던 걸 색다른 곳에서 하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맨날 벽보고 키보드를 두드렸었는데 끝을 모르고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글자를 적어내려가면 좀 멋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내려와 여기저기 다니며 들었던 생각들을, 혹은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현장에서 작성하면 좀 더 생생할 것이라 자신했다. 고작 생각해낸 게 이거라 ‘별 수 없나보다’ 스스로 인정하긴 했다.


오전 10시쯤 부산역에 내린 뒤 예약해둔 호텔에 잠시 짐을 맡겨뒀다. 보조백과 노트북을 꺼내서 말이다. 이후 뜨거운 햇빛을 내리쬐며 거리를 걷다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좀처럼 정보가 나오지 않는 어느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끝내주게 먹었다. 그리고 비로소 목표로 했던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와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원하게 한모금 들이키고 노트북을 열어 전원을 켰는데 이게 웬걸, 방전이 되어 있었다. 어제 퇴근하고 짐을 쌀 때 노트북 뒷면이 뜨거웠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고이 모셔온 것이다. 충전기는 카페와 멀리 떨어진 호텔에 있었고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짧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사진만 찍고 호텔로 돌아가 글을 쓸까 했다. 그런데 그건 현장에서 적은 생생한 글이 아니지 않나. 사실 현장에서 적는다고 더 특별한 내용이 담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확한 사실만 담기는 기사와 달리 내가 쓰려는 글은 상황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주 찐하게 전달되어야 하니까. 만약 일정을 정리하고 밤늦게 들어간 호텔에서 이전의 시간들을 복기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면 이곳에 온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여겨졌다. 고민할 틈 없이 등을 구부려 매우 작은 화면에 집중하며 쿼티키보드를 열심히 누르고 있다. 현장에서 매번 이렇게 취재했으면 사내 특종은 다 나의 것이 아니었을까 별스런 잡생각을 벗삼으면서:


글을 마무리할 때쯤 고개를 들어보니 뜨거운 햇빛으로 바다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빛나고 있었다. 눈이 찡그러져 보이는 그늘에 들어가기 바쁜 여름이지만 물이 찰랑거릴 만큼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무슨 색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저 멀리있는 배를 오랫동안 보고 있는 게 가능하다. 가족에게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카카오톡에 들어갔더니 업무 톡 관련 연락이 650여 개가 쌓여있었다. 나는 보지 못했다며 일정 기간 거리를 둘 수 있는 합법적인 이 무관심을 종종 즐겨야지 기약없는 다짐을 마음 한켠에 추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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