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Jul 22. 2022

그런 때를 지나고 있을 무렵

우산을 미쳐 챙기지 못한 직장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가 세차게 내리던 퇴근길이었다. Paul 제공

지난 2016년 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동갑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당시 의전을 담당했었는데 짧은 시간이라 깊이 있는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한 바 있다. 그래도 사회에서 만난 동갑내기라 그런지 이따금씩 연락이 될 때마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2년 전이었는데 해외에서 열심히 석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게 국내 취업이 됐는데 얼굴을 볼 수 있겠냐고 말이다.


해당 연락을 하고 나서 두달쯤 뒤에 친구와 광화문에서 만났다. 지난 2018년 그가 다니는 대학 근처에서 만난 게 마지막 만남이었으니 꼬박 4년 만에 얼굴을 마주대하는 것이었다. 어색하지 않을줄 알았는데 꽤나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과 말이 저녁을 먹는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안부를 묻는게 대화의 전부였는데 이 주제가 원래 어려웠나 싶을 정도의 가볍지 않은 공기를 느꼈었다. 여하튼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는 식사가 끝난 뒤 건물 밑에 내가 즐겨가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을 먹으면서 웜업이 됐는지 커피를 마시면서는 부담감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주제는 서른을 앞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지속 여부였다. 이제 수습기간을 보내고 있다는 친구는 나처럼 n년차가 되면 불평 불만이 많아질까 궁금해했다. 나는 곧바로 '수습만 끝이 나도 나랑 같은 모습이 될 거다'고 공언했다. 친구는 별다른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라는 답변을 줬다. 대학에서 했던 전공을 뒤로 하고 원하는 일을 위해 진로를 바꿔 석사까지 마쳤는데 막상 바라던 분야에서 취업을 마치니 기쁨보단 여러 걱정이 앞선다는 말도 내게 들려줬다.


친구의 말이 끝나고 나는 최근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털어놨다. 내 직업은 분명 대학생 때 치열하게 고민해 성취한 값진 것임이 분명한데 요즘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맞나 고민한다고 말이다. 이는 감사함을 모르는 것과 다르다. 앞으로 30년을 더 일해야 하는데 과연 이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게 정답일까 싶은 의문이 드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래 입에서 자주 내뱉는 말이 '짜치게 살고 싶지 않다'인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삶이 현재의 모습인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전에 해왔던 결정들을 곱씹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짜치지 않는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현실의 걱정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게 이 범주에 속한다면 참 씁쓸하지 않을까. 물론 부유하면 평온하지 않은 건 아니란 말은 오늘날 최고의 격언이라 칭할 수 있다. 현실이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삶은, 많은 열광을 받으며 사는 어느 백만 유튜버의 일상과 충돌되는 많은 지점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도 무수히 마주쳤던 사람들의 5년과 10년, 30년 뒤를 살아낼 계획은 어떻게 꾸려졌는지 궁금한 순간이다. 대책이 아예 없지는 않을테니 제발 내게도 귀뜸을 좀 해주면 좋으련만.


이같은 넋두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는 '우리가 그럴 때인가 보다'고 했다. 대학을 갈 때만 해도 어쨌든 비슷한 모양새의 정답지란 게 존재했다 여겨졌는데 그 다음의 삶은 정말 선택하기에 달렸으니까.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 선택이지만 꼭 다른 무언가 새롭고 신선한 탈출구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은 당장 주어진 오늘의 벅찬 일거리들이 싫어서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처럼 비슷하면서도 동일한 순간이 쌓일수록 처음의 감사를 잊기 마련 아닌가. 그리곤 돌아서 '그때 왜 그랬지'하며 후회를 말하는 게 인생의 루틴이지 않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탔던 버스 안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부모의 나이도 있었고 나와 동갑처럼 보이는 청년들도 있었다. 더러는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초년생의 모습을 한 이들도 지친 표정으로 버스에 몸을 맡기려 했다. 이처럼 주변을 살피고 있을 무렵 기사님의 통화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마도 동료 기사님에게 해주는 조언인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RPM을 아주 높게 쳐야해. 그래야 버스 컴퓨터가 인식을 해서 남산1호터널 지날 때 발목이 안 아프다니까. 그걸 한 두번하면 앞으로 운전하기 편할 거야"라고 말했다. 머리가 매우 하얗던 할아버지 기사님의 열정가득한 업무 현황을 엿보게 된 장면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뻥 뚫린 바다를 무작정 찾아간 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