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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23. 2022

깜짝 찾아온 순간은 휙 지나간다

최근 비가 내리면 그 장면을 찍고 싶단 생각이 종종 든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된 것일까. Paul 제공

어제 점심을 먹으로 집 근처 카페거리로 향했다. 메뉴를 선정하고 만난 게 아니었기에 차에서 내려 카페거리로 들어설 때까지 짧은 고민을 해야 했다. 모름지기 동네 주민이라면 커피를 마시러 이 거리로 오지 않기 때문에 더 난항이었다. 그래도 이곳에 산지도 24년이 다 되어가는 터라 무엇이 맛있는 식당으로 오랜 시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사라진 가지 덮밥을 제일 잘하던 일식집으로 향했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쯤 별안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일기예보는 분명 오후 3시나 되어서야 소나기가 지나갈 것이라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5분만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비의 굵기는 점점 거세졌고 결국 밥을 다 먹었지만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은 척을 하기에 이르렀다.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라 가게는 비교적 한산했고 내가 앉은 자리도 구석이어서 종업원의 눈치를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됐었다. 예상치 못한 머무름이 주어진 것이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비가 주르륵 내리는데 문득 '이렇게 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있던 적이 언제였지' 싶었다. 최근을 복기해보면 비가 내리는 날은 모두 일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땐 밖의 날씨가 맑은지 어두운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이동하고 있을 땐 비로 인해 교통체증이 늘어나는 게 짜증의 원인이었다. 이날은 아무런 업무도, 일정도 없었던 그냥 휴일이었는데 침대에 늘어지게 있지 않고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나와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볼 수 있었던 게 운이 좋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로지 비를 위해 시선을 창밖으로 던진 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오랜 과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십분 정도 지나갔을 때 더이상 가게에 머무르는 건 눈치가 보여 일어나 밖에서 기다려보기로 결심했다. 이에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안에서 기다릴 때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부 손님들은 가게에 우산을 빌려 차를 가지러 가기도 했다. 물론 그러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으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든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성격을 가진 내가 진득하게 날씨의 변덕스러움을 포용하고 있다니. 이왕 마음 먹은 거 편안하게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데 내 포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건너편 카페를 갈 예정이었으니 더 지체 말고 재빠르게 뛰어가면 되겠다는 결심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주택이 밀집한 곳이라 처마 같은 지붕이 입구마다 있었고 그곳들을 공략하며 카페에 도착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안도감을 뒤로 하고 커피를 주문해 외부 테라스에 앉았다. 분명 여름인데 벌써 가을이 찾아올 것 같은 날씨가 연속되는 덕분에 카페 안이 아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더욱이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그 소리가 시끄러운 배경음악보다 더 낫겠다 싶은 판단도 한 몫 했다. 그런데 웬걸, 주문했던 커피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비를 즐기려 했을 때 하늘이 화창해졌다. 언제 비가 내렸는지도 모를 만큼 깨끗한 구름이 가득 드리운 것이었다.


순간 헛웃음을 내뱉었다. 식당에서 카페로 뛰어와야겠다 결심을 했을 때만 해도 내리고 있던 비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우두커니 서 비를 보고 있기 보단 원래 계획이었던 커피 한잔을 실행에 옮겨 함께 즐기면 어떨까 싶었는데 변덕스러움이 가득했던 비는 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것의 속성인 '찰나'를 간과했던 나의 불찰이 어쩌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럽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순간을 누릴줄 알아야 하는데 그 위에 무엇이라도 더 얹으려다 놓쳐버린 것이다. 이를 인지했을 직후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걸 또 한번 깨닫게 됐다. 그 상황에서 내가 곱씹은 말은 이것이었다. 비가 좀 세차게 내려서 운치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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