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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25. 2022

고요 속 느껴진 일상의 당연함

목적지도 없었는데 외로울 때면 꼭 먼저 역을 찾아와 기차를 타고 시티로 나갔다. Paul 제공

"내일 여행가니까 알아서 밥 잘 챙겨먹어라" 어제 당직을 서고 돌아온 내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고보니 약 한달 전 가족여행이 예고된 바 있었다. 부모님은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지를 여쭈셨는데 하필 저녁 근무를 해야 하는 주라 쿨하게 패스했었다. 세상만사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 까먹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선언을 턱하고 받으니 잠시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다음날인 오늘 평소와는 다른 부산한 아침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족들의 채비가 휴대전화에 맞춰둔 알람소리보다 컸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쯤 일어나면 됐던 나는 날이 무더웠지만 방문을 조용히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시간 뒤 노트북을 켜 기사 하나를 처리하고 밥을 먹으려고 할 때 가족들은 "잘 있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꽤 시끄러웠던 집이 별안간 고요해졌다. 사람이 적어져서인지 에어컨을 키지 않아도 되는 서늘함까지 느껴졌다. 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집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새삼 와닿았다. 메뉴를 물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뭘 먹어야할지 딱히 생각해둔 것은 없었다. 단지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해치울 심산이었는데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치킨 쿠폰이 떠올랐다. 혼자서 치킨 한마리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부디 가슴 위로 손을 깊이 얹어보라 권해본다. 이들이 내뱉을 후일담과 동일한 내용의 모습을 아까 저녁 7시쯤 행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작은 닭이어서 어렵지 않게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 TV를 시청하면서 먹어서였는지 몰라도 꽤 여유롭고 괜찮은 저녁이었다.


치킨을 다먹고 정리를 하는데 문득 TV 소리가 싫어졌다.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무엇보다 적적한 집안을 이 소리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게 퍽 서글퍼졌다. 자리를 정리하다 리모컨을 쥐어 전원을 껐는데 이윽고 열어둔 창문으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만 날뿐 나의 걸음소리가 집안의 빈곳들을 채우진 못했다. 좀 외로운가 싶어 휴대전화 캘린더를 열었다. 이번주에 아무런 약속이 없었다. 저녁 근무라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 그런 것인데 이마저도 싫어지는 마음은 웬 심술인지.


머릿속을 스쳤던 기억은 호주였다. 어학연수를 하면서 초기 석달 정도 사촌과 거주한 것을 빼면 줄곧 혼자서 지냈다. 독방을 썼다면 차라리 자취를 한다고 여겼을 텐데 외국인 쉐어하우스에서 베트남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다. 음식도 그렇지만 생활습관에서 다른 점들이 잇따라 존재했고 여기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내가 혼자란 점을 더 많이 깨닫게 해줬다. 이런 답답함을 풀기 위해 종종 집 밖으로 나갔지만 해결책을 찾진 못했다. 현지 친구가 있어도 공허한 마음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진짜 가족이 없다는 데 따른 외로움이 절대적이어서 그랬다.


이에 난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자기 전에 한번, 그리고 수시로 가족 누구에게든 통화를 요청했다. 내가 사용했던 통신사 요금제는 국제전화가 무료였기에 부담 없이 줄지어 전화를 걸었다. 특별한 대화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밥은 뭘 먹었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주말에는 이런 장소를 가볼까 한다 등 어떻게 보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시시콜콜한 주제가 전부였다. 그때 왜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같은 말을 전함으로써 내가 혼자가 아닌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되뇌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현재는 절대로 그러지 않으니 내가 언급한 이유가 아마 맞지 않을까.


오늘도 일을 하면서 세상에 있는 한숨을 다 내쉰 것 같다. 선배와 주고받은 대화에서도 '희망' '존중' '배려' 등 우리에게 없는 단어를 쭉 나열해봤었는데 이렇게 돈을 버는 게 의미가 있나 했다. 이 상태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지쳤던 마음에 여행을 떠나 가족이 없는 집 안에서 갖은 청승을 떨고 싶어졌나. 어학연수 시절이 떠올랐을 때 난 곧장 휴대전화를 들어 가족들에게 한명씩 전화를 걸었다. 분명 같이 있다는 걸 알고 인지했지만 왠지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들 손목에 내가 사준 스마트워치가 있을 텐데 알람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웃펐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끝내 수신되지 않았다. 이내 포기하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다음엔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두 분의 내용은 '숙소에서 나와 산책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동일한 것이었다. 몇통의 부재중이 떠있으니 전화를 걸었던 것일 텐데 수화기 너머로 난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번 걸어봤다"는 싱거운 답을 보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머니는 아버지와 낮에 촬영한 사진을 가족 단체방에 올리셨다. 오늘은 이렇게 지나갔는데 내일 저녁을 뭘 먹어야 하나 하지도 않을 고민을 언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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