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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30. 2022

난데없이 찾아온 뜻밖의 돌파구

길거리 가판대에 신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면 그냥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Paul 제공

졸업한 모교로부터 또 다시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엔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모아 특별한 주제를 정해서 해달라는 것이었다. 최근 모교 언론인회에 강연 요청이 들어온 바 있는데 이것과 별개의 솔로 스테이지였다. 지난 강연을 준비하며 언론고시반과 연락이 닿았을 때 '그냥 커피나 밥을 시원하게 사줄 수 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의 취지를 전달했었는데 이게 특강으로 돌아올 줄이야.


이전 강연들은 졸업생으로서 하나의 직업군을 들고 후배들 앞에 섰다. 잠정적으로 이 분야를 선택하고 싶은 것이니 이야기를 전할 때도 딱히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기자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이들 아닌가. 세상에 다양하고 좋은 직업 가운데 (하필)기자를 선택해 나아가보겠다는 일념이 가득한 후배들에게 무슨 (안)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고 한참 여행을 즐기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수화기 너머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아버지가 "자신감을 가지고 해봐라"는 말을 건네셨다. 사실 해답을 얻으려고 전화를 한 건 아니란 점을 나도 부모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푸념이라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었단 사실을 빠르게 인정한 뒤 더이상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통화를 재빨리 끊었다. 이후 왠지 모를 떨림이 더 밀려왔다.


내가 이토록 망설이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최근까지도 팀의 업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요즘 선배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무직이라고 생각하기'란 말로 끝맺음을 하니 어떤 상황인지 짐작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발제만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기자들의 의견을 모아 선임 선배가 전달하면 다음 회의 때 "생각이 있어서 그런건데"라며 상명하복을 이유로 묵살되고 있다. 이에 박탈감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중이다.


아주 자그마한 행복을 느끼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마련된다는데 나노 단위로 쪼개어보아도 도무지 해당 감정을 찾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기자가 되겠다는 후배들을 만날 면목이 없는 것 같아 특강을 수락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 깊은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회신에 특강을 요청한 교수님은 '충분하다'며 엄지를 올려주셨다. 이후 특강과 관련한 요청 서류를 메일로 받아 더더욱 발을 빼기 어려운 모양새가 됐다.


과거엔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해 '빠짝' 기도하면 해결이 됐었다. 이 행위를 했다고 상황이 단번에 풀렸다는 절대적을 언급하고 싶은 게 아니다. 웬만하면 잘 넘어갔다는 뜻인데 이번에도 동일한 힘을 주었지만, 어쩌면 당연히 풀릴 것이란 확신에 더 게을렀을 수도, 시간이 이만큼 가도록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 '어차피 원하는 대로 흘러가겠지'란 확신으로 포장된 오만함이 내 안에 가득함이 분명했다. 또 고백하자면 선배들이 봤던 점의 결과를 은연 중 믿기도 했다. 위험함을 깨달은 나약한 인간은 매일 밤 잠들기 전 아주 세세한 쫑알거림을 시작했더란다.


내가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모든 게 윗분의 이끄심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뉴스에 나왔던, 대기업 취업자들의 스펙들이 나에겐 하나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모르고 당장 해결책을 달라고 떼쓰는 나에게 늘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계획해주셨던 윗분이었다. 이걸 새삼 깨닫게 됐는데, 최근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다. 나의 예상도 선배들의 예상도 정확하게 빗나간 일이 시작된 것이다. 지쳐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희소식에 무릎을 탁치며 '역시'를 언급하게 됐다.


한달여 앞둔 특강 전까지 상황이 바뀔까 의문이 들기는 한다. 원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을 만나려 하는 건 온전히 나의 욕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대와 소망 그 중간 어딘가를 마음의 기준점으로 삼아 기다려보련다. 왜 직장인들이 종종 하는 말인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가 있지 않나. 어느 것에서도 천년 만년은 없으니 다시금 주어진 일에 열중하려는 자세로 고쳐나가야겠다. 잘 할 거야란 막연함은 이미 많이 들었을 테니 생생함을 전하는 것도 가감없는 사실을 다루는 이 직업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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