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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폴리 Mar 17. 2019

선생님으로 불린다는 것의 의미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내 마음 자세 돌아보기

쌤, 오늘 점심 뭐 먹으러 갈까요?


네? 쌤? 아, 네


아직도 익숙지 않다. 요가 지도자 과정(TTC, Teacher Training Course)을 시작한 지 4주가 지나고 있는데도 '쌤'이라는 호칭은 아직 나에게 많이 어색하다. 여기서는 모두가 서로를 선생님, 쌤이라고 부른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선생님으로 호칭한다. 선생님,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한 학생들의 그 첫걸음을 축하하는 새로운 호칭이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어색하다. 내가 언제 선생님으로 불려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본다. 심지어 나는 과외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의 리더, 또는 조교 역할 등에서 몇 번 선생님으로 불려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정말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선생님으로 불려본 적은 거의 없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선생님으로 불리기 어색한 거보다는 부끄러운 감정이 더 크다. 선생님은커녕 제대로 된 학생이기에도 부족하다. 선생님의 구령을 따라 하기에도 바쁘다. 숨은 나 혼자 빨리 몰아쉬고, 동작의 끝에서  선생님이 구령하기 전에 내 멋대로 미리 끝낸다. 몇몇 동작에서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래서 내가 누굴 가르치지 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직 내가 누구를 가르칠 정도의 수준인가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많이 모자라다. 그런데 무슨 선생님인가?


2019 드리시티 요가 상반기 교육 1차 원장님 아사나 교육의 출석표 (지도자 과정은 5월 중순 까지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지 다시금 생각을 해본다. 요가에 대해 진지하고 좀 더 바르게, 깊게 알고 싶었다. 장기적으로 요가가 내 삶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으면 했고, 남들에게도 올바른 요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근거 있는 이론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깊이 요가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 나를 지도자 과정으로 이끌었다.


TTC를 처음 시작할 때 나에게 지도자 과정의 의미는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기보다 '요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요가를 가르치는 것'에도 조금씩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깊이 알아가는 과정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과정을 듣다 보니 이 좋은 요가를 바르고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잘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다. 내가 누구에게 요가를 잘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그 누구의 몸과 마음이 요가를 만나기 전보다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지금 지도자 과정을 듣고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선생님이 되길 내 의지로 택한 것이다. 




처음 TTC를 시작했던 3주 전보다 지금 요가가 더 좋다. 그럼 된다. 그전에 요가를 갈 때도 좋아서 간 것이긴 하지만, 그냥 건강을 위해 또는 하던 걸 하기 위해 가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가짐은 조금 달라졌다. 내가 좀 더 정확하고 바르게 요가를 배우고,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끔, 그게 부끄럽지 않게끔, 선생님으로서 당당하게끔 나를 만들고 싶다. 선생님이란 호칭의 무게 때문일까? 처음에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평일 아침 수련이 꽤나 익숙해졌다. 


TTC과정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야 하는 정규 주말 수업과 40시간을 채워야 하는 평일 수련이 존재한다. 직장인으로서 주말은 쉬니까 주말 수업은 잘 듣고 있지만, 평일 수련이 쉽지 않다. 나는 10시 출근에 7시 퇴근인데, 실제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아 아침에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집에서 아침 7시 정도에 나와야 충분히 수련을 하고 회사에 갈 수 있다. 대학, 대학원에 다닐 때도, 회사에 다닌 몇 년 동안도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적이 거의 없었던 내가 이러고 있다. 밤에는 최대한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다음 날 입을 옷과 운동복, 가방을 미리 싸놓고, 아침에는 정말 눈뜨면 세수하고 이를 닦고 바로 나간다. 다행히도 센터가 멀지 않아 도착하면 7시 30분에서 50분 사이이다.


아침에 하는 수련은 사람들과 다 같이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도착한 시간부터 시작하는 일종의 자기 주도 학습법이다. 일명 마이솔 수련이다. 내가 하는 아쉬탕가 요가는 시퀀스가 다 정해져 있다. 내가 나의 페이스대로 수련을 하면 선생님이 와서 잘못된 건 고쳐주고 모르는 건 알려주는 그런 자기 주도 학습 시스템이다. 내가 센터에 일찍 도착하면 출근 준비를 하는 9시까지 1시간 30분가량을 수련할 수 있기 때문에 센터에 도착하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침에 요가 센터에 가서 타임스탬프 어플로 찍은 사진들


하지만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어젯밤에는 분명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꼭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살짝 안 좋아서 그 핑계에 다시 잠든다. 내일은 꼭 가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밤 급 약속이 잡혀서 늦게 집에 들어간다. 그럼 또 내일은 좀 어렵겠네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만다. 저녁에도 종종 수업을 들으러 간다. 저녁에는 두 클래스를 연속으로 들어야지 마음먹었는데, 하나의 수업을 듣고 나니 피곤해져서 그냥 집에 가기도 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수련을 하고 있고,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요가를 가고 있다. 잘 배우고 수련해서, 내가 좋았던 그 느낌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하고 싶다.


지도자 과정 마치시고 요가 강사로 전업하실 예정이에요?
아니면 취미로 하시는 거예요?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음, 명확한 대답을 하기는 좀 어렵다. 취미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지도자 과정이긴 하다. 요가를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배우다 보니까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들이 많다. 일단 내 주위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요가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막 새록새록 자라난다. 언젠가는 요가 강사로서 집중적으로 일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기획자로서의 본업을 포기할 수 없다. 십수 년간 학교에서 배우고 일터에서 구르면서 익힌 기획업이 더 익숙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내가 일을 그만두고 요가 강사로 가겠다고 말하진 못한다. 당장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겠지만, 부업(?)으로 요가 가르치는 것을 소소하게 꾸려보려는 생각은 가득하다.


예를 들면, 과정이 끝나고 내 주변에 요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1부터 알려주는 주말 클래스를 시작할 수도 있다. 요가가 대체 무엇인지, 종류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동작들이 있는지, 참석자에게 맞는 요가는 무엇인지 등, 요가를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수업도 열어보고 싶다. 초보 요가 몇 주 과정 등으로 재미있게 사람들이 듣고 싶은 수업을 기획하여, 요가에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볼 수 있는 클래스를 만들어보고 싶다. 꼭 학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이렇게 조금씩 소소하게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10년 후에는 10년 차 선생님이 되는 거 아닐까? 당연히 그동안 개인 수련도 계속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에 정말 학원에서 가르칠 수 도 있지 뭐. 그때 준비가 어느 정도 되면 요가 선생님도 내 본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른 살이 넘어서 요가를 배운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10년 차 선생님, 음 아직도 원장님의 반 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진 않네. 이제 100세 시대 아닌가? 


그때 되면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협상해서 주 3일 근무로 하고 나머지 2일은 요가를 가르치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몇십 년 또 일하는 거지. 그렇게 본업이 바뀔 수 있겠지. 본업과 부업이 바뀌는 그 시기를 기대해본다. 그럼 정말 일 그만둬야지...


지도자 과정에서 수련하는 사진


현대 사회를 보면 확실히 요가 선생님과 비슷한 직업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피로감 총량이 점점 넘치는 사회, 몸보다 머리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회, 스트레스 넘치는 도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케어해주는 직업들의 중요성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바로 요가가 그런 게 아닌가?


요가 선생님은 그냥 요가 동작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요가를 운동의 일종으로 접근했지만, 지금 느끼기에는 심신을 함께 성장시키는 철학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 삶과 비슷한 것 같다. 한두 시간의 수련 속에서 우리는 짧은 인생을 경험하고, 매트 위에서 느낀 바를 삶에 다시 적용해서 더 좋은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 매트 위에서 흘리는 땀으로 몸을 케어할 수 있고, 그때 느낀 감정과 생각들로 마음을 케어할 수 있다. 요가 선생님의 역할은 우리의 땀을 이끌어내고, 또한 삶 속에서 더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움될만한, 그리고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일에 있어서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남에게 무엇을 진지하게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뭐가 있었을까? 이렇게 진지하게 지도자라는 무게를, 선생님이라는 무게를 지기 위한 과정에 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 아직은 더 많이 알지 못하고 더 많이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더 노력하고 배울 것이다.


책이나 인터넷의 지식, 자격증, 수료증 등이 본인의 실력이라고 믿지 말고,
자신의 깊은 경험을 기반으로 배움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TTC 수업에서 원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걸 마치 알고 계셨다는 듯이 말이다. 내가 깊게 경험하고 느낀 바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먹어보지 않은 레몬의 맛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레몬의 실제 맛을 몸으로 경험한 자만이 그 맛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에게 레몬을 맛보게 해 줘야 진정 그 느낌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먹어본 자만이 레몬을 생각했을 때 입 안에 침이 고이는 신 맛을 바로 연상할 수 있다. 요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요가를 가르치려는 우리들은 수련을 해 나간다. 제대로 된 수련이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된 가르침이 나올 테니까. 선생님이라는 소리에 부끄럽지 않게, 나의 경험을 계속 키워나갈 것이다. 언젠가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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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폴리

광고 회사에서 디지털 마케팅 및 캠페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가와 글쓰기, 일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소소한 기획, 문화 예술 등에 관심이 많은 5년 차 직장인입니다. 궁금한 점 및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더 많은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개인 인스타그램 (하단 링크) 또는 이메일 (karis86@gmail.com) 로 언제든지 편하게 문의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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