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의 평일 요가 수련기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퇴근의 말을 건네드리고 급하게 회사를 빠져나왔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다. 원래 나오던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왔다. 요가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데, 시작 시간까지 불과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단 3개 정거장이지만 버스를 타야 한다. 재빠르게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올라타고 시간과 거리를 단축한다. 늦지 않고 잘 도착했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수련실로 들어간다. 요가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작과 함께 한혜진이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세상사, 일, 연애, 인간관계, 돈 등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밖에 없더라.
그렇다. 그동안 회사에서 일들이 내 맘 같았는가? 그동안 연애가 내 맘 같았는가? 그러면 돈은?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내 몸뚱이 하나 플러스알파 정도 아니겠는가? 오늘 수업에서는 자신의 몸을 잘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움직이고 잘 통제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첫 숨을 쉬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면서 깨끗해져야 하는 내 머릿속에 잡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운동을 가지 않았던 일,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취소된 출장, 읽어야 하는 책, 써야 하는 독후감, 며칠 뒤에 잡았던 약속 등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이때다 하고 나타났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서 굳어 있던 내 몸을 서서히 풀어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수업은 난이도가 높은 수업이다. 그걸 또 잊고 있었다. 구령의 강도가 갑자기 세지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했던 동작이 종종 등장했고 내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플로우가 조금 익숙해졌을 즈음에 선생님은 강도를 더 높인다. 여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하기엔 좀 아쉬운 동작들이다. 계속 도전한다. 흔들린다. 휘청거린다. 그래도 다시 정렬을 맞춘다. 하고 있던 헤어밴드가 이미 다 젖었다. 몸에는 땀이 줄줄 흐른다. 아까 그렇게 생각났던 잡념들이 무색할 만큼 모두 사라졌다. 동작을 제대로 만들려고 내 몸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시퀀스의 리듬과 호흡이 나를 움직이고 나는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 의지로 내 몸도 잘 못 가누겠다.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자꾸 땀만 흐른다. 이번 달에 요가원에서 주로 다루는 동작이 팔을 바닥에 대고 몸을 지탱하는 '암 발란스(Arm-Balance)'인데, 계속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힘이 빠져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몸의 무게를 잘 버티던 팔과 손목에 피곤이 쌓였다. 땅에 머리와 팔을 대고 물구나무를 서는 머리서기 2 자세를 만들고 이어서 바카아사나(두루미 자세)까지 가는데 팔이 덜덜 떨린다.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안전에게 내 몸을 살짝 양보해본다. 이미 상의는 다 젖었다. 밝은 남색의 옷이 땀으로 다 젖어서 그냥 검정이 되어버렸다. 동작 중에 그게 웃겨서 한 번 옷을 쥐어짜 봤더니 즙 짜듯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는 흔들려도 흔들리는 대로 내 몸을 맡긴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인다. 땀이 계속 나서 몸이 동작 중에 미끄러져 중간중간 닦고 또 닦는다. 그래도 땀이 나는 걸 보면서 무슨 수도꼭지인가 싶다.
어느덧 마무리 동작까지 왔다. 요가 수업에서 항상 마무리는 누워서 몸의 긴장을 풀고 쉬는 송장 자세(사바아사나)이다. 온몸의 힘을 빼고 눈 위에 수건을 덮는다. 열려 있던 창문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와 나에게로 온다. 아, 참 기분 좋다. 오늘도 내가 해냈구나. 엄청 잘 통제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했구나. 씨익 미소가 절로 나온다. 수업이 끝나고 일어서는데 옷이 축 늘어졌다. 또 한 번 생각한다. 오늘도 땀 정말 많이 흘렸구나. 아무튼 내 몸은 수고했고 마음은 참 개운하다. 마치 내 안에 있었던 잡념들을 짜내어 흘려보낸 것처럼.
커버 사진 - Taco Fleur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