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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폴리 Aug 11. 2020

오늘도 땀을 흠뻑 흘렸다

어느 직장인의 평일 요가 수련기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퇴근의 말을 건네드리고 급하게 회사를 빠져나왔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다. 원래 나오던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왔다. 요가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데, 시작 시간까지 불과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단 3개 정거장이지만 버스를 타야 한다. 재빠르게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올라타고 시간과 거리를 단축한다. 늦지 않고 잘 도착했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수련실로 들어간다. 요가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작과 함께 한혜진이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세상사, 일, 연애, 인간관계, 돈 등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밖에 없더라.


그렇다. 그동안 회사에서 일들이 내 맘 같았는가? 그동안 연애가 내 맘 같았는가? 그러면 돈은?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내 몸뚱이 하나 플러스알파 정도 아니겠는가? 오늘 수업에서는 자신의 몸을 잘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움직이고 잘 통제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첫 숨을 쉬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면서 깨끗해져야 하는 내 머릿속에 잡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운동을 가지 않았던 일,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취소된 출장, 읽어야 하는 책, 써야 하는 독후감, 며칠 뒤에 잡았던 약속 등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이때다 하고 나타났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서 굳어 있던 내 몸을 서서히 풀어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수업은 난이도가 높은 수업이다. 그걸 또 잊고 있었다. 구령의 강도가 갑자기 세지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했던 동작이 종종 등장했고 내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플로우가 조금 익숙해졌을 즈음에 선생님은 강도를 더 높인다. 여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하기엔 좀 아쉬운 동작들이다. 계속 도전한다. 흔들린다. 휘청거린다. 그래도 다시 정렬을 맞춘다. 하고 있던 헤어밴드가 이미 다 젖었다. 몸에는 땀이 줄줄 흐른다. 아까 그렇게 생각났던 잡념들이 무색할 만큼 모두 사라졌다. 동작을 제대로 만들려고 내 몸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시퀀스의 리듬과 호흡이 나를 움직이고 나는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 의지로 내 몸도 잘 못 가누겠다.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자꾸 땀만 흐른다. 이번 달에 요가원에서 주로 다루는 동작이 팔을 바닥에 대고 몸을 지탱하는 '암 발란스(Arm-Balance)'인데, 계속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힘이 빠져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몸의 무게를 잘 버티던 팔과 손목에 피곤이 쌓였다. 땅에 머리와 팔을 대고 물구나무를 서는 머리서기 2 자세를 만들고 이어서 바카아사나(두루미 자세)까지 가는데 팔이 덜덜 떨린다.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안전에게 내 몸을 살짝 양보해본다. 이미 상의는 다 젖었다. 밝은 남색의 옷이 땀으로 다 젖어서 그냥 검정이 되어버렸다. 동작 중에 그게 웃겨서 한 번 옷을 쥐어짜 봤더니 즙 짜듯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는 흔들려도 흔들리는 대로 내 몸을 맡긴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인다. 땀이 계속 나서 몸이 동작 중에 미끄러져 중간중간 닦고 또 닦는다. 그래도 땀이 나는 걸 보면서 무슨 수도꼭지인가 싶다.


어느덧 마무리 동작까지 왔다. 요가 수업에서 항상 마무리는 누워서 몸의 긴장을 풀고 쉬는 송장 자세(사바아사나)이다. 온몸의 힘을 빼고 눈 위에 수건을 덮는다. 열려 있던 창문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와 나에게로 온다. 아, 참 기분 좋다. 오늘도 내가 해냈구나. 엄청 잘 통제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했구나. 씨익 미소가 절로 나온다. 수업이 끝나고 일어서는데 옷이 축 늘어졌다. 또 한 번 생각한다. 오늘도 땀 정말 많이 흘렸구나. 아무튼 내 몸은 수고했고 마음은 참 개운하다. 마치 내 안에 있었던 잡념들을 짜내어 흘려보낸 것처럼.


커버 사진 - Taco Fleu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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