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는 남자, 발리에 가다 2편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리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휴양지이다. 넓은 모래사장과 맑은 바다, 서핑, 스노클링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당연히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휴양하기 좋은 곳이지만, 요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발리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붓은 휴양지를 넘어 수련지이다.
우붓에는 수십여 개가 넘는 요가 스튜디오들이 있으며, 요가인들에게 최적화된 슬로우 푸드, 비건 푸드 레스토랑들이 널려있다. 수풀이 우거진 곳 또는 트로피칼 뷰가 잘 보이는 곳에서 자연과 함께 요가를 하면 안 되던 동작도 될 것 같다. 요가를 수련하고 받으면 피로가 싹 사라질 것 같은 마사지샵도 거리마다 있으니 요가인들의 천국이 아니한가? 그래서 발리의 우붓에는 요가인들로 북적인다. 요가한 지 만 1년이 된 나도 그래서 발리에 와있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가 뜬 지 7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발리의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장시간(?) 비행을 하니 몸도 찌뿌둥하고 피로감도 느껴졌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내 짐만 안 나오는 건 아니었다. 비행기를 내린 지 50분이 넘어서야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나오다가 또 멈추고 10분 기다리고 나오다가 또 멈추고 몇 분 기다리고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비행기는 6시에 도착했는데 결국 내 짐은 7시 반에 되어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참 답답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나를 위로했다. 클룩이라는 앱으로 공항부터 우붓까지 택시를 예약해놨는데, 이 또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마 내가 너무 늦게 나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데에 가셨다가 오셨는지 또 20분가량 기다려서야 기사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발리의 첫 느낌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여행을 다니면 항상 배우는 게 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기다림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저녁 8시 즈음에 공항에서 나와 1시간 30분가량이 걸려 우붓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이곳은 호텔이라기보다는 가족이 운영하는 펜션 느낌을 받았다. 방은 굉장히 간소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나처럼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들에게 꽤나 적합한 숙소였다.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했는데 숙소가 일반 호텔과는 다르게 주인집이 있고 따로 떨어져 있는 방이 여러 개 있고 그 사이사이에 풀숲으로 꾸며져 있어 자연경관은 꽤 훌륭했으나 생각보다 사진처럼 막 멋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주인집 어머니와 아들들이 너무 친절하고 정이 많은 느낌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Ubud의 Ayu Bungalow's & Spa 2)
짐을 풀고 저녁 10시쯤 배가 너무 고파 숙소에서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20분 정도를 돌아다니고는 가장 마음이 끌리는 데로 들어가서 앉았다. 마감할 때가 다 돼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고 분위기도 딱 현지 스타일이고 가격도 저렴하니 첫 식사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면을 시키고 싶었는데, 뭐가 뭔지 정신이 없어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메뉴판에 가장 인기 메뉴라고 되어있는 나시고랭을 시켰다. 물론 맥주도 현지 브랜드로 큰 병을 주문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이거였어.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맥주를 목에 넘기며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식사를 끝내고서야 아 오늘이 다 지나갔고 나는 발리 우붓에 있구나라는 것이 현실로 느껴졌다. 알고 보니 내가 갔던 그 음식점은 그 근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지 음식점이었고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들어간 거 보면 운도 좋았나 보다.
그렇게 발리 우붓의 첫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