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폴리 Jul 01. 2018

발리 우붓에서 '요가'하는 남자

요가하는 남자, 발리에 가다 4편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역시 맑은 하늘과 초록빛 수풀이 나를 반겨주었다. 환하게 반겨주는 풍경과는 다르게, 내 몸은 어제 5개의 요가 클래스가 무리가 되었는지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했던 9시 수업을 뒤로하고 관광지를 가볼까 생각했다. 수련자로서 우붓에 온 나에게 관광은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기도 했고, 관광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좀 아쉬운 지라 좀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조식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주친 우붓 풍경들


조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숙소에서 8시 반에 나와, 도보 거리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몽키 포레스트로 향하였다. 원숭이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라,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관광지일 것 같았다. 숙소를 나와 걷다 보니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떠있을 때는 요가원에서 수업만 들었지 이렇게 야외 풍경을 마주할 여유를 갖지 못했는데, 이렇게 걷다 보니 지금 내가 마주한 시간이 평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몽키 포레스트에 가는 길 중간에 마주친 익숙한 이름 <Yoga Barn>. 원래 처음 우붓에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접했던 요가 스튜디오인 요가 반(Yoga Barn)의 간판이 눈에 보였다. Radiantly Alive 요가 스튜디오에서 무제한권을 끊고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입장이기에, 굳이 다른 요가 스튜디오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하지만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 반이니까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Hi, Yogis!"라는 말을 보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요가 반을 처음 들어섰을 때 리조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셉션도 호텔의 느낌과 유사했으며, 전체적으로 넓고 트여있었다. 게다가 수풀이 우거져 있어 발리의 분위기 좋은 리조트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요가 센터 내에서 샐러드 등의 비건 음식과 음료수까지 구매하여 파라솔에서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니... 나중에 다시 한번 우붓에 온다면 이 곳에서 요가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키 포레스트에 도착해서 5,000원가량의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구매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꼭 손오공의 수렴동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꽤 긴 오솔길을 지나자 원숭이들이 한 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 중심에 들어서자 사람이 놀이동산을 뛰어다니듯 수많은 원숭이들이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숭이들이 이렇게 길거리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심지어 어떤 열매의 껍질을 까서 내용물만 먹고 있으니 원숭이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었다.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 떼가 몰려다니는 것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각자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원숭이가 주인인 곳이었다. 손님으로서 가까이에서 주인을 영접하니 영광일 따름이었고, 처음엔 징그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귀여웠었다. 9시 요가 수업을 스킵하고 몽키 포레스트를 관람한 보람이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즈음 다시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였다. 요가원에서 더 가까워진 새로운 숙소에 짐을 잠시 맡겨놓고 바로 요가원에 도착해 11시 수업을 들었다. 아래 시간표는 Radiantly Alive의 6월 14일 목요일 시간표이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수강한 수업들이다.





수업명 : Arm Balance
강사 : Kimberley Utama
시간 : 6월 14일 11:00 - 12:30

핸드 스탠드, 즉 물구나무를 연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암 발란스 수업은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사실 두 손으로, 또는 팔로 온몸을 지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항상 발로, 또는 하체로 중력을 받아내는 우리 몸의 방향을 바꾸어, 손으로, 팔로, 어깨로 몸의 무게와 중력을 받아 내기 위해서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과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암 발란스 수업은 고난도 수업에 속했지만,  한국에서는 강좌가 많지 않아 듣기 어려워 발리에 가면 꼭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수업이었다.


킴벌리 선생님은 모든 수련생들에게 어떤 자세 또는 동작을 성취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힌트를 한 마디씩 던져주었다. 그리고 수련생 각자의 실력에 따라 블록, 또는 스트랩 등의 도구를 통해 다양한 옵션을 주었다. 동작이 더 잘 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옵션으로 조금 더 시도해볼 것을 권했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더 쉬운 옵션으로 안전하게 동작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에게는 굉장히 유익한 수업이었다. 심지어... 뭔가 영화배우처럼 생긴 듯한 느낌적 느낌... 멋져!



암 발란스 수업을 마치고 배가 고파서 Radiantly Alive 바로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가자마자 맥주 하나 시켜 잔에 따라 들이키니 천국이었다. 이러니 내가 하루 종일 요가 해도 살이 안 빠지지... 다양한 반찬이 밥과 함께 곁들여진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식 나시 짬뿌르와 미고랭을 시켜 순식간에 삭제해버렸다. 



시간이 남아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러 왔다. 요가원에서 더 가까워진 새로운 숙소의 이름은 '부아나 홈스테이(Buana Homestay)'였다. 이 숙소에서 2박을 머물고 꾸따로 떠날 예정이니까, 벌써 우붓에서의 총 4박 중 절반이 지난 셈이다.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 분께서 너무 친절하셔서 한 번 감동하고, 수영장과 비치베드가 너무 예뻐서 두 번 감동하고, 방을 열고 이쁘고 깔끔해서 세 번 감동하고, 환영하는 과일과 시원한 얼음물에 네 번 감동했다. 마지막으로 3만 원 정도의 가격에 이래도 될까 다섯 번 감동하고 말았다. 정말 좋은 숙소라고 생각되어 요가원의 다른 친구에게 소개까지 시켜주었고, 내가 나중에 이 동네에 다시 온다면 꼭 이 숙소에서 머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요가원과 3분 거리라니 가까워서 더 좋았다.



수업명 : Kundalini Yoga & Sound
강사 : Amrita Le Page
시간 : 6월 14일 13:00 - 14:30

쿤달리니 요가는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요가적인 접근이다. 쿤달리니는 일종의 생명 에너지라고 볼 수 있는데, 본 수업에서는 쿤달리니를 끌어올리는 반복적인 호흡 및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쿤달리니 요가에 대해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채워 좀 더 윤택하게 살아가는 방법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팔을 높이 든 상태로 호흡을 하면서 배를 튕기는 동작을 20번 이상 반복하고 누워서 잠시 쉬다가 다시 배를 튕기는 동작을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아마리타 선생님은 우리가 누워있는 동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큰 징과 같은 악기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생각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에 힐링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심신의 안정을 주는 테라피적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수업명 : RA Vinyasa
강사 : Mark Das
시간 : 6월 14일 16:00 - 17:30

Radiantly Alive 요가 센터에 등록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주인공, 마크 다스(Mark Das)이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요가인 중 한 명인 Dylan Werner와 함께 팀을 이루어 세계를 다니며 요가 & 핸드 스탠드를 가르치던 인스트럭터였다. 마크가 우붓에서 요가 수업을 한다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꼭 가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가 둥지를 틀고 있는 Radiantly Alive로 내가 오게 된 것이다.


내가 들었던 그의 수업은 빈야사 수업이었는데도 핸드 스탠드를 연습하는 동작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파워풀하지만 부드럽고, 나 자신을 좀 더 도전하게 만들 수 있는 요가 수업이었다. 요가를 오랫동안 수련한 그도 한동안은 요가를 신체 수련의 일부로 생각했었는데, 매일 지속적으로 수련하다 보니 신체 수련을 넘어서 정신과 삶에도 요가가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남들을 따라 하고 벤치마킹을 많이 하게 되는데, 남을 따라 하는 것보다 어제의 나를 벤치마킹하여 더 나은 나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일 핸드 스탠드 연습을 하고 있고, 핸드 스탠드에서 깨달은 균형을 인생에도 적용시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의 수업은 내 수련 방향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수업명 : Restorative
강사 : Ade Adinata
시간 : 6월 14일 18:00 - 19:30

내 진짜 선생님 같은 요가 선생님 Ade의 Restorative 수업. 아쉬탕가 요가처럼 힘과 근육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켜야 하는 요가와는 다르게 Restorative 요가는 최대한 인위적인 힘의 개입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운 중력의 힘으로 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요가 스타일이다.


이 수업을 통해 하루 동안 피곤했던 근육들을 이완시킬 수 있었고, 몸이 한 곳에서 머무는 동작들을 통해 마음까지 릴랙스 시킬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힘을 써야 할 때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쉬탕가 요가처럼 힘을 써서 내 몸과 근육을 긴장시킬 때도 필요하고, 리스토레이티브 요가처럼 자연스럽게 방향만 잡고 흘러가는 대로 유지할 때도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방식을 때에 따라 잘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모든 수업을 마치고 같이 3개의 수업을 들었던 이란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Radiantly Alive 바로 앞에 위치한 Bali Buda라는 건강 음식점이다. 우붓에는 이처럼 건강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이 많아 요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맥주도 팔지 않는다... 매 끼니마다 맥주를 마셨는데, 여기서는 술을 팔지 않아서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요가하고 난 다음엔 시원한 마사지가 최고지!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사지 샾에 들려 어깨와 목, 등 위주로 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어깨가 잘 뭉쳐서 전신 마사지보다는 어깨, 등, 목 위주로 집중해서 받는 마사지가 좋다. 어깨가 말랑말랑 해지고 나니 기분이 좋아 젤라또를 사 먹었다.(무슨 연관성이지...?) 스파르타 요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적합한 보상이었다. 


내일도 요가해야지. 요가로 시작해서 요가로 끝나는 삶을 며칠 동안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긴 한데... 휴가를 내고 스파르타 훈련소에 온 건지, 태릉 선수촌에 와있는 건지, 쉬러 온 건지 혼란과 혼돈 속에서 또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을 청했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

매거진의 이전글 발리에서 생긴 일 '하루 요가 8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