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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폴리 Aug 12. 2018

글짓기에도 뜸 들이기가
필요한 이유

글이 작품이 되는 시간, 글 뜸 들이기

밥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는 뜸을 들이는 것이다. 이미 가열된 밥솥에 추가적인 열을 가하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 이 시간 동안 밥솥 내의 남아있는 열기가 쌀알 하나하나 가운데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밥맛을 살린다. 밥 짓기의 완성을 하는 숭고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밥의 맛을 더 이끌어 낸다.


글짓기에도 뜸 들이기가 필요할까? 글쓰기의 과정을 생각해보자. 소재를 모아 정제하고, 주제에 따라 글의 방향을 정하며,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문장으로 만들어 글을 적어나간다. 최종으로 초고를 다시 들여다보며 몇 번이고 교정, 교열, 윤문을 통해 퇴고 작업을 거친다. 쌀을 씻고 불리고, 물의 양을 조절하며, 밥솥에 열을 가하고, 마지막에 뜸 들이는 작업까지 글짓기도 밥을 짓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밥에 열을 가한다고 밥 짓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듯, 글에도 뜸을 들이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펜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고 해서, 글짓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글을 쓰는 작업에 가열하게 열을 가해야 하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잘 묵힌 김치가 깊은 맛을 내듯, 글도 잘 묵혀놓아야 한다. 그 시간의 경과만으로도 그 글을 다시 접했때, 내가 생각했던 그 글이 아니게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오늘은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다시 보면 내가 생각했던 멋있는 글이 아닐 때가 있다. 글의 다리와 팔이 뒤바뀐 느낌이다. 생각보다 이런 경우가 많다. 다시 수술을 좀 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 더 나아진다. 그리고 다시 글을 쟁여놓는다. 다음 날 보면 또 다르다. 뛰어난 작가라면 한 번에 걸작을 탄생시킬 수도 있겠지만, 자꾸 볼 수록 글이 더 좋아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대문호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 "10만 단어 정도를 버렸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퇴고를 강조했다. 초고를 완성된 글로 탈바꿈시키기 까지는 수많은 퇴고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글의 구조가 제대로 되어있는지, 논리적 흐름은 타당한지, 틀린 부분을 고치고, 어색한 부분을 바로 잡는다. 쓸데없이 쓰인 말은 지우고, 어렵게 쓰인 말은 보다 쉽고 적절한 표현으로 바꾸며, 문장과 문단의 순서를 매만져서 글을 윤이 나도록 곱게 만든다.



글에 뜸을 들인다는 것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하는 퇴고의 준비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냥 무작정 퇴고를 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퇴고의 질을 높이는 것이 뜸 들이는 시간의 핵심 역할이다. 교정과 교열, 윤문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뜸이 덜 들은 글은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다. 하루가 지나서 내가 쓴 글을 보면 또 오글거린다. 글쓴이 자신이 잘 쓴 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글은 시간이 지나고 봐도 만족할 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봤을 때도 창피하지 않은 글, 고칠 만큼 고쳐서 더 이상 고치고 싶지 않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면, 밥 지을 때처럼 글도 그렇게 지어야 한다.


사실 뜸을 들이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뜸을 들이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대강 써도 글은 글이다. 뜸을 들이지 않아도 글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이다. 글의 뜸 들이기 시간이 바로 '글이 작품이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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