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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Jun 11. 2021

들꽃

"주영아"

"응?"


한참 동안 말없이 파도를 감상하던 은혜는 별안간 내 이름을 불렀다.


"이주영~"

"왜~"


발끝으로 은혜의 허벅지를 쿡 찌르며 대답하자 은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왜 불러~"

"너 이름 여자 같아"

"뭐야, 뜬금없이?"


은혜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끈적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내 이름 별로야?"

"아니~ 예뻐, 주영이, 주영이, 이주영이"


은혜는 주문을 외듯 내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상한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바닷바람이 차 안을 맴돌았다. 이번엔 좀 더 긴 바람이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은혜는 노래를 멈췄다. 그리곤 자세를 고쳐 앉아 나를 바라봤다. 은혜가 재미없을 때 짓는 표정은 늘 못생기고 귀여웠다. 그 모습에 내가 미소를 지으면 약이 오르는지 더욱 뾰로통 해졌다.


"나는 내 이름 좋아."

"나도 좋아. 싫다고 한 거 아닌데.."

"내 이름을 들으면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게 뭐야~"


내 시답잖은 소리에 배시시 웃는 모습은 은혜의 가장 사랑스러운 행동이었다. 어깨를 으쓱 올리고 턱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영락없이 어린아이 같았다. 한 번은 그 모습을 흉내 냈다가 크게 혼쭐이 났던 적도 있었다.


"나는 내 이름 별로야~"


비스듬히 앉아 있던 내게 엎드려 안기면서 은혜가 말했다.


"왜? 은혜, 이름 예쁜데? 의미도 좋잖아."

"의미가 좋아서, 뭔가 특별한 느낌이어서."

"특별하면 좋은 거 아닌가?"

"난 특별한 거 싫어."

"특별한 게 싫어?"

"뭔갈 기대하는 것 같고 그 기대를 만족시켜줘야 할 것 같고.."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동안 은혜는 뺨을 내 가슴에 꼭 붙이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헤매는 사이 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 꽃 보여?"

"어디?"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바다와 모래사장 밖에 보이질 않았다.


"여기 아래"


여전히 가슴에 뺨을 붙인 채 고갯짓 하는 은혜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차 아래 작은 들꽃들이 피어있었다. 발톱처럼 작고 하얀 꽃들이었다.


"응, 귀엽고 예쁘다."

"난 이런 꽃이 좋아. 크고 예쁘고 유명한 꽃들 말고 이런 올망졸망한 꽃들."

"은혜도 올망졸망해~"


은혜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두 눈동자엔 들꽃이 만개해 있었다.

은혜의 이마와 두 눈꺼풀에 입 맞췄다. 은혜는 몇 초간을 더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그런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자 은혜는 다시 내 가슴에 기대었다.


"은혜란 이름은 안 특별해. 엄청 많잖아."


은혜는 대꾸하지 않았다. 정적 사이로 다시 불어온 바람이 들꽃들을 춤추게 했다.

나는 그 꽃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쟤 이름도 은혜야. 그 옆에는 지혜고, 그 옆에는 유진이고, 그 옆에는 수민이고, 그 옆에는.."

"주영"

"응?"

그 옆에는 주영이야. 꽃잎이 한 겹 더 있는 얘, 걔는 주영이야~"


다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은혜를 꼭 끌어안았다.

숨 쉬기 조금 버거운 목소리로 은혜가 말했다.


"뭐야, 왜 좋아해? 꽃잎이 하나 더 있는 욕심쟁이라서 이름이 주영인 건데~?"


끌어안던 힘을 풀자 은혜는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약이 잔뜩 올랐어도 해맑은 은혜의 얼굴을 보며 미소가 지어지는 나 자신이 얄미웠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은혜의 머리칼이 얼굴 앞으로 흐르며 살랑살랑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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