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조울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by 폴짝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 랄프 엘리슨


생각해 보면 비극의 시작은 조울증이 발병하고 15년이나 병인지도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처음 조울증을 진단받고 입원한 것이 4월 1일 만우절이었고, 저는 ‘거짓말처럼’, ‘정신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조울증 치료의 시작이 만우절이었다는 것은 저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마치 이 병을 너무 끔찍하고 심각한 것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누군가의 뜻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인생이 비극적이라고 생각될수록, 유머 감각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슬프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귀도(로베르트 베니니 분)는, 숨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이 괴로워하지 않도록 군인 놀이처럼 연극을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본질적인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꼬맹이였던 아들은 두려움을 이기고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조울증의 경험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조울증이라는 병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조울증을 통해 고민하는 시간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저는 제가 아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 즉 나만 알고 남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조울증을 겪는 과정은 괴로웠지만, 그 경험이 저를 성장시켰으며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믿는 편입니다.


‘정신병 환자’라는 소수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는 여러 소수자들에 관해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역지사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병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관찰해야 하다 보니, 저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여유가 부족할 수 있는데, 제 경우에는 긴 조증과 우울증의 시간이 있었기에, 제법 심도 있게 자아 성찰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울증을 앓기 이전과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성격 중 어디까지가 원래 성격이고, 어디부터가 조울증에 영향을 받은 부분인지 구분하기가 좀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성격'과 ‘기질’, 변할 수 있는 ‘성품’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때, 이들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조울증 유전자로 인해 만들어진 부분은 기질에 해당할 것이고, 살아오면서(혹은 조울증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부분은 성품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전 글에서 조울증 환자는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쉽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인지 환자는 ‘진정한 나’를 찾고자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바꿀 수 없는 부분보다는, 바꿀 수 있는 부분이야 말로 내가 발견해야 할 나의 모습에 해당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 나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이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으로부터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전 글들에서 말씀드린 여러 이유 때문에 저는 조울증에 ‘완치’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조울증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은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조울증이 발병한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기간은 잠복기에 해당하며,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남은 평생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울증 환자분들이 절망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조울증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어서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조울증은 잘 관리하면, 당뇨병을 잘 치료하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정도의 불편함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 벌어진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서, 일어난 일들이 다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분석하고,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써 보고, 좀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행동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입니다. 조울증을 품고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던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이라는 말은 저를 포함한 모든 조울증 환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울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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