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과 함께하는 삶

조울증의 계절

by 폴짝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며칠 전 병원에 다녀 왔습니다. 저는 2주에 한 번씩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오는 게 루틴이 되었습니다. 최근 기분이 좀 가라앉으려 해서 조금 힘들던 참이었는데, 주치의 선생님과 그런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아무리 약으로 조절을 한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비환자에 비해 기분 변화의 폭이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속절없이 우울증에 빠지게 될 때면 꽤나 힘들어서, 항우울제라도 잔뜩 먹어서 기분을 올리고 싶다는 곤란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단지 그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께 그런 부탁은 하지 않습니다. 들어 주시지도 않겠지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보통은 그냥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는 모릅니다. 이래서 조울증 환자에게 우울기는 힘들면서도 답답한 시기입니다. 더군다나 기분이 떴을 때의 생생한 기억과 비교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지기가 쉽습니다.


예전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여주인공(손예진 분)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사는 게 지루하다…….” 이 대사를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우울기에는 그야말로 사는 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루하다는 표현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상태가 몇 달씩 계속되는 경우에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여기서 상태가 더 나빠지고 지속되면 때로는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태는 견디기 힘듭니다.


저는 대략적으로 우울기 대 조증기의 비율이 2 대 1 정도로 나타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 년 중 사막 같은 8개월의 우울기와, 폭풍우 같은 4개월의 조증기가 반복되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긴 우울기 뒤에는 대개 비교적 짧은 조증기가 찾아왔습니다.


경조증 시기의 삶은 한마다로 달콤한 인생과도 같습니다. 창의력이 높아져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무척 쉬워집니다. 동시에 감수성도 예민해져, 삶이 다채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반면에 씀씀이가 늘어나고, 짜증이나 화를 잘 내고, 독선적이 되기 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그래도 제 경우, 조증은 대체적으로 조절이 쉬운 편이었습니다. 기분이 뜨기 시작하면 금방 감지할 수 있었고, 선제적으로 처방약을 조절하는 식으로 대응하면 적어도 경조증을 넘어 심한 조증 상태에 이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처럼 사고를 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조울증을 오랫동안 방치한 것 치고는, 이만하면 상당히 잘 관리하고 있는 편이라고, 그래서 조증으로 인한 피해가 없어진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조울증 환자의 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도 조증을 잘 막게 되었으면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우울증보다 조증이 주변 사람들을 훨씬 더 괴롭게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병을 잘 달래 가며 지내지 못했던 과거에, 저는 늘 조울증에 휘둘리며 살았습니다. 심한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찾아왔고, 증상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기분 상태를 겪고 나서야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조울증에 휘둘리며 산다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조울증의 원인을 찾던 중에, 제 친가와 외가 쪽으로 모두 조울증 관련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려받은 병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했고, 그래서 이 저주받은 유전자를 준 부모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해서 조울증 유전자를 얻은 것이 아니듯, 부모님 역시 일부러 조울증 유전자를 준 것도 아니므로, 기본적으로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가족 안에 이미 조울증 환자가 있었음에도, 저에게 똑같은 병이 생겼을 때 방치했던 점은 많이 아쉽습니다. 물론 이조차도 부모님 세대는 정신 질환에 관한 지식이나 전문적인 도움을 얻기 어렵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조울증 때문에 벌였던 일들 중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드는 잘못은, 종종 잠수를 타곤 했다는 것입니다. 조증 때의 무한 긍정 에너지로 취직을 했다가, 나중에 갑자기 우울증이 오면 무단 결근하고 집에 틀어박히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급격히 우울증이 오게 되면 업무를 해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이렇게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해결 방법을 모르다 보니 결국에는 현실도피를 택했던 것 같습니다. 고용주나 동료 입장에서는 일을 해야 할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황당하고 화가 났을 것이고. 실질적인 손해도 입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우울증이 해소되고 몇 달 뒤에 ‘조울증 때문에 그랬다’고 굳이 해명하거나 사과하기도 어려워서 대부분 그냥 묻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조울증을 겪는 와중에 이해할 수 없게 잘 풀린 일도 있었으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처음 발병한 이후로, 학창 시절동안 조증과 우울증은 끊이지 않고 번갈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와 경조증 시기가 겹치곤 했습니다. 우울증으로 공부에 손을 놓고 있다가도, 결정적인 때에 맞춰 경조증의 에너지로 단시간에 만회하고 필요한 성적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괜찮은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행운은 언제까지나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로는 중요한 순간과 조울증 증상 사이에 엇박자가 날 때가 더 많았고, 삶은 많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암울한 시간은 결국 지나갔고, 그러면 다시 숨 쉴 만한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기분 변화가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조울증이 계절이 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울증 관련 용어 중의 하나를 예로 들자면, 조증과 우울증 시기와 사건을 합쳐 전문가들은 흔히 ‘삽화(episode)’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의 원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시기’라는 말로 대신하는 편입니다. 조증 시기, 우울증 시기 또는 조증기, 우울기와 같이 말입니다.


갑자기 삽화라는 용어를 떠올린 까닭은, 위에서 언급한 조울증과 계절의 유사성을 설명하고 싶어서입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조증기과 우울기를 ‘시즌(season)’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즌(계절)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됩니다. 자연 상태에서 계절이 바뀌고 순환하는 것을 생각하면, 조울증 환자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일종의 자연 현상처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생각은 조울증을 덜 고통스럽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맹추위가 싫다고 해서 특정 계절을 내 마음대로 없애버릴 수 없듯이, 조증과 우울증도 완전히 건너뛰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계절에 대비하듯, 일정한 주기와 정도를 예상할 수 있다면 조울증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그러면 피해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연말에 한해를 되돌아보는 것처럼, 조울증의 한 시즌이 지나감에 따라 그동안 적어 두었던 일기를 들춰보며 복기해 봅니다.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조울증과 함께 하는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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