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균형은 없다

조울증과 균형감각

by 폴짝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인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생(生)이라는 한자를 잘 보면, 소(牛)와 외줄(一)로 나눠 볼 수 있다, 즉 삶이란 소가 외줄을 타는 것과도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분만의 재미있는 해석이겠지만, 이런 생각은 조울증과 함께하는 삶을 잘 표현하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조울증을 생각하면 광대가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조울증을 관리한다는 것은 조증과 우울증 사이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과 같다는 점에서 이런 외줄 타기와 유사해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울증 환자인 제 입장에서 보자면, 비환자들은 평범하게 맨땅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그 상태가 때로는 무척 부럽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자리는 흔들리는 줄 위니까, 거기에 맞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평지에서 평범하게 걷는 것도 처음 배울 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는 것을 보면, 걷기를 배우는 데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걷는다는 행동 자체가 연속적인 균형 잡기의 예술입니다. 예를들면 왼발을 내딛으면서 일부러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넘어지기 전에 다시 오른발을 내디뎌 균형을 유지합니다. 한 걸음걸음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데, 이처럼 걷는다는 것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용합니다. 걷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과거 2족 보행 로봇 개발 당시의 수많은 실패 사례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일을, 우리는 심지어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조울증 환자는 걷기 대신 외줄 타기를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해야 합니다. 평지에서 걷는 것에 비해 난이도가 훨씬 높지만, 환자가 평생 외줄 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 기술을 익히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어설프고 실수를 많이 하게 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너그럽게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조울증 관리는 막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쓰러뜨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막대는 조금씩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쓰러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도 쉴 수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조울증을 치료하고 관리해 나가는 삶은 끊임없이 신경 쓸 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합니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신경 쓰기의 기술을 몸에 완전히 익혀서 자동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 비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균형을 잡고 있는 중에도 막대는 조금씩 흔들리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조울증을 잘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비환자보다는 기분 변화의 폭이 더 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심각해지지 않는 범위에서 기분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흔들림입니다. 어느 정도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자면, 조울증 관리는 양팔저울의 영점을 맞추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양팔저울의 균형을 맞춰 보았던 경험이 있다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한쪽 접시에 어떤 물건을 올려놓은 후, 다른 한쪽에 무게추를 더하고 빼면서 저울이 수평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물건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에, 여러 무게추를 올렸다가 내리는 일을 반복합니다. 조울증 치료 초기의 시행착오와 비슷한 과정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양쪽 접시의 무게가 비슷해지면, 이번에는 작은 무게추를 가지고 더 미세하게 조정합니다. 이것은 조울증에 익숙해진 뒤에 생활 습관이나 약물 조절을 통해 치료를 최적화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정확히 영점에 맞추기는 힘들고,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위에서 든 비유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울증 관리는 ‘균형’을 잡는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완벽한 균형’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상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추구하고 집착하다 보면 조울증 환자의 삶은 극도로 피곤해집니다.


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종종 실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줄 타기를 하다가 줄에서 떨어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다시 줄에 올라 균형을 잡고 걸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완벽주의자는 이럴 때마다 크게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완벽주의는 오히려 조울증 치료와 관리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과, 자신을 너그럽게 대할 줄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회복 탄력성도 좋아집니다. 조울증 관리를 잘하다가도 조증이나 우울증을 겪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스스로를 실패자나 한심한 인간 따위로 여기며 자책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더라는 것이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조울증으로 실패를 맛보게 되더라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기나긴 조울증 치료 과정에 덜 지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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