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인정하기
너 자신을 알라.
- 고대 그리스 격언, 델포이 신전
병식(病識, insight)은 자신이 특정 병에 걸렸다고 인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병식이라는 단어 뜻을 살펴보면, 한자로는 ‘병에 관한 앎’, 영어로는 ‘통찰력, 이해, 간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가장 핵심은 ‘통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조울증에 관해 대강 이해하는 상태에 머물러서는 확고한 병식이 생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얄팍한 병식은 조울증 증상이 깊어짐에 따라 흐려지게 되어 치료 과정을 원점으로 돌려놓기 쉽습니다. 그래서 병식의 수준이 깊이 있는 앎, 즉 통찰에 이를 정도가 되어야 병증의 경중에 상관없이 흔들림 없는 병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확고한 병식은 조울증 환자가 병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치료의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신 질환에 있어서 병식은 특히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른 신체 질환은 병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가 물리적으로 드러나 비교적 알기 쉬운 반면, 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의 경우 병의 영향이 환자의 정신적인 문제로 나타나기 때문에, 당사자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조울증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에게 병식이 생기지 않아 답답해합니다. 언제쯤이면 병식이 생길까요, 하는 질문을 조울증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조울증 환자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곤 하는데, 크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병식이 생기기 이전이라서, 즉 병에 대한 인식이 약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둘째, 조울증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서 병식이 생겼지만 조증이 재발하면서 병에 대한 인지가 희미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한때 조울증을 인정하고 치료를 잘 받던 환자조차도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많습니다.
몇 년 전 조증이 재발해져 증상이 심해졌을 때, 기존에 생겼던 병식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저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과거 조증 때 그랬던 것과 비슷한 실수를 많이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저는 어느 정도 스스로 제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은, 조증이 가라앉은 뒤에 그동안 적어 둔 일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이처럼 기록의 유용함은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어느 날 문득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조울증이란 병을 잘 알고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맹신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울증 환자는 자신의 병식에 대해 자만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식은 완성해 가면서 환자 스스로 또 주변 사람에 의해 평가하고 조정해야 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조울증 환자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설픈 병식은 조울증 환자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대로 된 병식은 조울증의 격한 파도 속에서 등대가 되어 줍니다. 제 경험상, 병식 덕분에 적절한 타이밍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병식은 경조증의 조짐이 나타날 때 그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이 때문에 심각한 조증 상태에 이르기 전에 집중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심한 조증을 방지하는 데 있어 병식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병식이 자리 잡힌 후로 조증을 방어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만큼 병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단단한 병식이 확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조증과 우울증을 통해 얻은 경험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 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둘째, 자신의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메타인지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되면 기분 상태 변화도 예민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주치의나 가족이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자신을 관찰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 이럴 때 가족이 변화를 느끼고 해 주는 말이 혼자서 챙기기 힘든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상태에 관해 알게 된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로 적어 두는 과정을 거치면 생각도 함께 정리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조울증에 대처하는 원칙들에 혼란을 느낄 때 다시 점검하기도 수월해집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울증을 대비하는 원리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과 반복을 통해 완전히 몸에 익히고 나서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병식이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이 치료 의지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식이 생기고 나서야 이 병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병식이 생겼을 때를 조울증 치료의 진정한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랜 기간 혹은 평생 동안 병식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병식은 간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도 그랬지만, 조증 증상이 심해지면 기왕에 있던 병식이 사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자만하지 말고, 건강한 병식을 키워 나가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기본 생활 태도인 것 같습니다.
확고한 병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 자신을 잘 알고자 애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실제로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파악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울증 환자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완벽 자체가 아니라, 완벽에 이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평생을 두고 계속해야 하는 노력이기에, 저 또한 다시 한번 각오를 단단히 다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