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조울증과 역지사지

by 폴짝
타인은 지옥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타인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워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타인과 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평범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누군가 조울증 환자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환자와 비환자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일이 대개 환자와 환자의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가장 가깝기에 오히려 갈등이 생기기도 쉽고, 그렇다고 아예 서로 못 본 척하기도 어렵습니다.


조울증 환자와 비환자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다는 벽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경험’의 차이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비환자는 조울증 환자의 증상을 몸소 겪어보지 못했고, 반대로 조울증 환자는 발병 전 정상적이었던 자신의 상태에서 멀어져 있으므로 피차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양쪽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울증 환자는 환자대로, 자신 때문에 겪어야 할 가족의 고통에 관해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는 점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환자니까, 하고 많은 것들을 당연시 여기당당한 태도를 갖는다면 상대편에서 탐탁지 않게 볼 것입니다. 가족 역시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환자에게 어떤 악의가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병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갈등의 제일 큰 원인은 사실 조울증이란 병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편이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환자와 비환자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양쪽 모두 한 발짝씩 다가서야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인 조울증 환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더 있는 비환자 쪽에서 좀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게 그나마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환자에게 병식과 치료 의지가 생길 때까지, 환자의 가족들은 조울증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조울증을 이해하려면 꽤 많은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책 등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건이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또는 조울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회원들의 글을 읽고 질문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환자나 환자 가족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대할 때 중요한 태도가 또 있습니다. 바로 환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바라보지 말고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굳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조울증 환자는 ‘미친’ 사람인 것도 틀린 말이 아니긴 합니다. 미쳤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손쓸 수 없다'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라는 말에는 치료의 여지가 있으며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 차이로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흔히 가족들 입장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조증기보다는 환자가 얌전하게 있는 우울기가 훨씬 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울증 환자 입장에서는 우울기가 훨씬 더 괴로우며, 이 시기에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할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 시기에도 환자를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환자에게 조증이 나타날 때는 그 나름대로 잘 대처해야 합니다. 조증으로 인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증상이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보호 입원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합니다. 강제 입원을 당한 환자는 그 당시에는 가족들을 원망할지 모르나, 증상이 가라앉고 나서 차분히 대화하면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조치는 조울증 환자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환자의 가족이 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 직접적으로 조언을 하기보다는 꾸준히 관찰하는 편이 좋습니다. 평소와 달라진 점은 없는지 모니터링하다 보면, 조증이나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이상 신호를 알아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만 이때 관찰이 '감시'로 느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조울증 당사자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편견을 원망하고 있어 봐야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적극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아 나가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자신이 정상적일 때 혹은 조울증에 걸리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상상한 뒤 타인들이 조울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를 짐작해 보게 되면, 비환자들에게 조울증이 어떻게 비칠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통해,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덜 억울하게 느껴지고, 조울증 환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도 나아질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쓴 문장은,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표현한 말이라고 오해받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옥이란 타인의 판단과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의해서 형성되는 자기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조울증 환자들은 남의 판단에 의존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견에 휘둘리지 않아야 남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환자들이 더 잘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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