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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14. 2017

2011년 11월 말

커피를 주문하다

어학원을 다닌지 2달이 되어간다. 이때가 되어서야 낯설음이 가시기 시작한다.

평소에 난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개발자로 일하던 몇 년 동안 맥심골드를 오전 10시, 오후 3시에 한 잔씩 두 잔을 마시던 습관이 있었지만 그것은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담배를 피지 않던 내가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전 8시나 9시부터 거의 자정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컴퓨터 앞에서 떠나질 않았으니... 어쨌든 평소에도 미각이 둔해서 뭘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커피도 쓴맛과 단맛, 그리고 그윽한 커피향만 알지 커피맛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를 둔 덕택에 커피 초보는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그나마 부드러워서 좋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것도 내게는 그냥 쓴 커피다.)

멜번에 온지 두 달 쯤 지나니 이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사실 멜번은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커피"라고 하면 떠올리는 [스타벅스]가 멜번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워낙에 길거리 카페도 많고 어지간한 카페의 커피는 맛있다고 한다. (난 잘 모르겠다.)

어학원이 끝난 어느 오후, 커피를 사려고 어학원 바로 아래의 커피집에 들렀다. 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서 얼마인가 보려고 메뉴판을 봤더니 얼래? 메뉴판에 아메리카노가 없다!! 그래서 내성적인 나는 '여기는 아메리카노를 안 파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카페로 갔다. (뭐, 널린 게 카페고 다 맛있다고 하니.) 그 카페에서도 아메리카노를 찾았는데 거기도 아메리카노가 없다!! 왠지 모를 고집이 생겨서 또다른 카페를 찾아서 들어갔다. 헐.. 아메리카노가 없다!! 그리고 나서도 두 군데의 카페를 더 들러서야 난 멜번의 카페에는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카노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에서 카페 라떼를 시켰다. 다행이 잘 알아듣는다. 그런데 사이즈를 물어본다. 난 '스탠더드'라고 했고 직원은 못 알아들었다. ㅠ.ㅠ 몇 번이고 '스탠더드'를 미국식 발음, 영국식 발음을 번갈아 써가며 말하고 나서야 직원이 "아하~! 스탠더드?"라고 한다. '응? 내가 발음한 것이랑 차이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Yes!!"라고 대답했다. 결국은 그렇게 카페 라떼를 한 잔 받아들고 '내 발음이 그렇게 이상한가?'라고 생각하면서 카페를 나선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어학원 바로 옆의 카페에 한국인 청년이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그간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나: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데 여기는 안 팔던데 왜 그러는 거야?" "청년:아, 형님.. 여기서는 아메리카노를 'Long black'이라고 해요." 그랬다. 이름이 다른 것이었다. "나:스탠더드라는 발음도 잘 못 알아듣던데?" " "청년:스탠더드 사이즈는 그냥 미디엄이라고 해요." 헐... ㅡㅡ;;

그 후로부터는 커피 잘 마시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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