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의 ⟪잘 살겠습니다⟫
소설 ‘잘 살겠습니다’에 나오는 주인공 ‘나’의 청첩장 돌리는 기준이다.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은 이런 거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줘?' 하는 눈빛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청첩장을 주기로 했고, 줄까 말까 싶으면 안 주는 쪽으로 하객 명단을 만들었다.
'왜 나는 안 줘?' 때문에 곤란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물며 그렇게 묻는 사람이 빛나 언니일 줄이야. 빛나 언니라니. 지난 몇 년간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다.
언니는 결국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빛나 언니가 몇 년 만에 연락이 와서는 자꾸 자기를 초대해달라고 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예나 지금이나 참 특이한 누나야"라고 했던 구재가 공항 가는 길에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빛나 누나가 왔었나? 왜 난 못 본 것 같지?” ... 삼백 명 정도 되는 명단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빛나 언니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청첩장을 받고도 결혼식에 오지 않은 사람은 빛나 언니 말고도 많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주말에 다른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냥 피곤해서 참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지인을 통해서 축의금을 전달하기 마련이었다. 그냥 청첩장만 받은 경우라면 몰라도, 따로 만나 밥을 얻어먹었을 경우에는 그래야 하는 게 상식이고 예의였다. 그런데 이 언니는 자기가 먼저 초대해달라고 하길래 기껏 시간 내서 밥도 사주고 청첩장도 줬더니 결혼식에 오지도 않고 축의금조차 내지 않았다.
장류진 작가의 ‘잘 살겠습니다’에는 두 인물이 나온다. 작은 일에도 눈치 있게 상대를 배려하여 처신할 줄 아는, 사회생활 규칙과 매너를 지키고 회사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난 ‘나’와 그와는 정 반대로 악의는 없지만 크고 작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눈치와 센스에 더해 기본적인 경제관념도 없어 어리고 답답하게 보이는 ‘빛나 언니’다. 그 둘은 각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며 서로에게 청첩장을 건넨다.
키보드 및에 깔려 있던 흰 봉투를 발견한 건 빛나 언니와 한정식을 먹고 두 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책상을 닦으려고 키보드를 들지 않았으면 아마 계속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봉투를 열자 “우리 결혼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카드가 나왔다. 빛나 언니의 청첩장이었다. 이게 뭐야. 밥도 안 사고 그냥 이렇게 던져놓고 간 거야? 청첩장이 무슨 피자집 전단이야? 나는 원래 빛나 언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축의금도 오만원 정도 낼 생각이었다. 똑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었으니까. 정식으로 시간 내서 청첩장을 준다면 분명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쯤 되자 더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라면, 나라면 정말 이렇게는 안 해. 손에 쥐고 있던 텀블러의 뚜껑을 열어 청첩장 위에 세차게 내려놨다. ... 그리고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25,000(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 - 13,000(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값) = 12,000
청첩장을 돌리는 것 하나도 ‘나’와 ‘빛나 언니’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과정 사이에는 청첩장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회적 규범을 담고 있는 일인지도 나타난다. 소설에서 '나'는 '빛나 언니'를 보며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줄곧 하지만, 결국은 빛나 언니가 잘 살기를 응원하며 끝난다.
청첩장을 돌려본 적이 없었을, 20대 초반의 나는 '빛나 언니'를 바라보는 '나'에 가까웠다. 친구들보다 이른 시기에 독립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엄마에게 용돈 투정을 부리는 친구와 더 이상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웠다. 타인의 마음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들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였고 '빛나 언니'와 닮은 친구의 실수와 잘못들을 결국 내가 이리저리 덮으며 수습하는 게 불편했다. 악의는 없더라도 나에게 피해를 주었으니 나쁜 행동이라 단정 지으며 조금씩 거리를 두곤 했다.
그러다 스물아홉이 되어 청첩장을 돌릴 때, 내가 빛나 언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결혼을 앞둔 20대의 마지막, 딱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나의 결혼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 상상하며 즐겁게 결혼식을 준비해 가던 중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나의 가족을 이룬다는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이미 내 결혼 소식을 아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결혼 소식을 꼭 알리고 싶은 지인들을 떠올렸다.
꽉 찬 스케줄러를 훑으며 결혼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만나기 힘든 지인들과 지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약속을 잡았다. 결혼 소식을 들은 오랜 친구들은 본인의 결혼인양 설레고 신기하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얼른 만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축하의 말을 전했고 그 말에 나도 조금씩 결혼이 실감 나며 설렜다. 뒤이어 만나기 힘든 친구와 약속을 잡아 조심스레 결혼 소식을 전했다. 바로 그때, 축하의 말에 더해 되돌아왔던 한 문장을 들으며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청첩장 돌리는 순서도 의미가 크다던데, 내가 몇 번째야?’
지방에 있는 중학교 친구를 포함하면 두번째, 그러나 가까이 있는 친구들 중에서는 첫번째였다. 당사자에게는 첫번째 혹은 두번째라는 말의 의미가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아직 더 친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 청첩장 돌리기 규칙은 중요한 요소 하나를 빼먹은 상태였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고작 이 세 가지의 규칙 정도였다.
1. 청첩장을 돌리는 시기: 결혼식 전 한 달에서 2주 사이어야 한다.
2. 청첩장을 돌리는 기준: 1년 이내에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어야 한다.
또한 내가 그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기꺼이 갈 수 있어야 한다.
3. 청첩장을 돌리는 방법: 웬만하면 시간을 내어 밥을 사며 얼굴을 보고 직접 청첩장을 전달해야 한다. 단,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사이라면 우편으로 보내거나 모바일 청첩장으로 소식 정도만 전해야 한다.
청첩장을 누구에게 먼저 줄 지, 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수개월 간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나의 본가와 남편의 본가 가족들, 남편과 나 사이에 별다른 트러블 없이 잘 준비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청첩장에서 문제를 만났다. 그리고 이게 누군가에게는 내가 '빛나 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첫 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결혼식을 고작 며칠 앞두고 갑작스럽게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 소식을 이제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며, 우리 사이가 그 정도냐며 서운하다는 전화였다. 결혼식 때 갈 테니 얼굴 보자는 말과 함께 우편으로 청첩장을 꼭 보내달라고 했다. 초대하지 못했는데 전화를 한 지인이 소설 속의 빛나 언니와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민폐일까 고민하다 결국 연락하지 않았던 순간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과 함께 먼저 연락해 축하해주는 마음이 고마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대체 청첩장이란 무엇인 걸까. 누군가에게는 5만원 지폐와 동일하게 보이는 민폐 카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받지 못하면 섭섭한 의미 있는 카드가 되기도 하는구나. 이렇게 청첩장을 돌리며 어떤 때에는 '나'의 입장에서 '빛나 언니'를 만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 '빛나 언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나'와 '빛나 언니'는 고작 한 걸음 차이였다. 사실은 내가 양쪽 모두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것을, 스물 아홉에 결혼 소식을 전하며 알았다.
청첩장 하나가 이렇게 복잡하고 사회적인 물건이었다니. 나는 그 사이에서 일반적인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행복하고 축하받는 결혼을 하기 위해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상식과 예의를 누구나 아는 정답에 맞춰 완벽하게 정립해야 했다. 청첩장을 돌리는 시기, 청첩장을 돌리는 기준, 그리고 청첩장을 돌리는 순서까지. 센스 있는 '나'가 되려면 많은 검색 결과와 수많은 개인들의 사회적 기준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아내야 했다.
청첩장을 흔히들 왜 '돌린다'라고 말할까 궁금했다. 돌린다는 '아무렇게나 취급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우리의 결혼 소식은 적어도 나와 남편에게는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청첩장에 담긴 결혼 소식은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기쁜 소식이며 상대가 '빛나 언니'더라도 진심 어린 축하의 말 한마디만 전해준다면 우리에게는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청첩장을 돌린다’는 말, 그 사이에 포함된 수많은 규칙과 규범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의무이자 사회이지만, 나 혹은 누군가가 소설 속의 '나'인지, 아니면 '빛나 언니'인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서로의 결혼 소식을 단순하게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이 전부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