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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l 21. 2022

조성진과 새책

-그리고 독서 후유증

벽돌책이든 어려운 철학서나 사회학서든 책 한 권을 읽는 데 오래 걸린 경우에 일종의 후유증을 겪는다. 책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기가 빨렸다고 해야 하나 뭔가 공허해진 이유도 있다. 이럴 때 가벼운 에세이나 가독성 좋은 소설책이 처방약이 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잔잔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법도 있다. 나는 음악, 조성진이 연주한 쇼팽을 선택했다.


조성진 음반(LP)

알다시피 조성진은 2015년 한국인 최초 폴란드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는데, 여기에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다. 심사위원인 피아니스트 짐머만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게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금메달이네! (This is gold!)" 콩쿠르 진행 중에 조성진의 우승을 직감한 것이다.



음악을 오래 들어왔고 또 좋아하지만 전문가급 귀와 감식안, 지식이 없어서 어떤 연주가 훌륭한지 나는 잘 모른다. 심지어 쇼팽 콩쿠르 우승 이전에는 조성진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지금도 쇼팽은 조성진보다 다른 음악가의 연주를 즐겨 듣는 편이다. 예를 들면, 발라드와 피아노 협주곡은 짐머만, 왈츠는 랑랑, 프렐류드와 에뛰드, 녹턴은 루빈스타인 이런 식이다. 콩쿠르 우승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아마 조성진을 찾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조성진 실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익숙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익히 들어온 그것에서 벗어난 연주 속도나 터치 강도, 지휘자 그리고 카덴차에 마음과 귀를 열지 않아서이다.


조성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 실황 카세트테이프
콩쿠르 당시 실황 LP는 중고가로 최저 5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다시 후유증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런 증상에는 음악도 좋지만 새로운 문학 작품들을 접하면서 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작가와 작품에 손이 뻗지 않는 이유도 '익숙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본디 안정을 추구하며 살지 않았고 변화를 그다지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 경우 책과 음악은 다르다. 내가 가진 기준과 틀이 견고해서 깊이 팔 수는 있을지언정 넓게 확장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나는 새로운 작가와 연주자들 작품은 부지런히 모아 놓은 모순적 인간이기도 하다. 수집가를 가장한 물욕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는 곳에 두면 언젠가는 읽고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 따위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책이 준 기쁨과 거기서 비롯한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다시 기쁨의 순간으로 순환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데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조성진 연주가 도움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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