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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Aug 06. 2022

[서평] 스토너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스토너는 INFJ다.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주인공 스토너는 “타인에게 진정한 친밀감이나 신뢰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어찌 보면 불운한 인간이다. 대학에 갔지만 타의로 농업을 전공해야 했고 졸업 후에는 부모와 함께 “즐거움이 없는 노동”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문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학의 힘을 파악”하게 된 그는 일련의 변화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세상과 유리遊離된 인물에서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 인물로, 세상과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다. 그 여정 길에서 이디스와 결혼하지만 사실상 실패한 결혼이다. 부인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 교수로서도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한다. 못살게 구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는 괴로워한다. 실패의 연속이다. 암에 걸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명예퇴직한다. 그리고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우리 모두는 실패하며 살아가는 부족한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실패의 서사는 용기와 희망을 우리에게 남긴다. 다 그렇게 산다고, 모두들 실패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그러면 이 책은 평범한 인간이 평범한 삶에서 누구나 겪는 실패를 담담히 보여주는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인터뷰했다고 한다. “나는 그(스토너)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사실 나는 저자 의도대로 읽었다. 실패의 서사보다는 한 인간이 그 실패들 속에서 보여준 희망들만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장면들을 인덱스하며 읽었는데 여덟 장면 정도 나왔다.


#1. 비록 아내와 관계는 소원하지만 강의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걷고 있는 주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장면


#2. 1년이 넘도록 혼자 살림을 하면서 아이와 아내를 돌보지만 그 와중에 학생들 과제를 채점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장면


#3. 자신의 이미지와도 같은 서재를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모습


#4. 아내 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중, 딸이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 어쩌면 자신이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을 얻는 장면, 이후 “말투에 자신감이 붙고”, “내면에서는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엄격함이 힘을 얻는” 장면


$5. 그렇게 아끼는 서재가 (아내에 의해) 사라졌지만,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약간의 위안과 기쁨, 그리고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의 흔적까지도 느끼던 장면


#6. (예나 지금이나 불륜은 인정받을 수 없는 행위이지만)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면서 결국 자신도 세상의 일부였음을 깨닫는 장면


#7. 불행한 삶을 살다 이제 술에 의존하는 딸을 보며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하는 장면


#8. 나이가 들고 점점 어깨는 굽어가지만 전에 없는 생기로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스토너는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소설 초반부 그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든” 인물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성찰하는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한 모습을 보여준 위대한 주인공이다.



어떤가. 실패와 불행의 서사인가 아니면 희망의 서사인가. 물론 답은 없다. 답이 없어야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은 우리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 던진 그 질문이 실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넌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INFJ다. 그럴 것이다. (사람을 남녀로 이등분하고, 혈액형 네 개로 유형화하고, 열 여섯 개 성격으로 구분 짓는 일들은 과학적이지 않아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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