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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02. 2022

[서평]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제목 그대로 한국 근대성의 기원을 찾는 책이다. 저자는 부제처럼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을 단초로 한국 근대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앞으로 새로운 주체 구성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탐색을 한다.



1부에서는 한국 ‘민족’ 개념의 기원을 찾는 작업을 한다. 봉건적 신민을 근대적 국민으로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군주라는 지위가 적극 요청되는데, "일본의 천황제처럼 근대적 메커니즘에 의해 이미 준비된 표상 장치들을 끌어안으면서 출발한 일본의 천황제와 달리, 조선의 경우는 청일전쟁 이후 중화주의적 질서와 맞물려 있던 전제군주적 의미들은 심각하게 소거되었지만, 새로운 의미화를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입헌적 군주로의 변신을 꾀했다는 점"에서 기호가 말 그대로 텅 비었다. 그 빈자리를 '민족'이 차지했다는 것이 저자 주장이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기독교로 표상되는 서양 문명국을 선택하면서 오히려 부재와 상실을 확인하는 모순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때 개인보다 민족이, 물질적 자아보다는 정신적 자아가 우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 담론에 민족이라는 절대적 기호의 지반을 조금도 돌파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부 섹슈얼리티 또한 마찬가지다. 아득한 허공에 느닷없이 던져지는 방식으로 '남녀평등, 여성 해방'이라는 테제가 던져진다. 왜? 서구 문명국가들이 모두 그러하니까. 하지만 조선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이유를 "여성의 생식력, 그것이 지닌 국가적 중요성"으로 대치시킨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정결한 여인과 그렇지 않은 경우라는 이분법이 작용하게 되고 "가정의 책임, 자녀교육, 국민 분자로서의 책무를 벗어나는 어떤 일탈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근대 시기 성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이분법에서는 사랑과 애국, 이 둘은 함께 공존할 수가 없다. 사랑은 일탈이고, 애국은 도덕적이며 공적인 지표가 되는 셈이다. 지금도 성에 대한 인식론적 구도가 여전히 근대 계몽기의 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적 주체로서의 욕망은 여전히 묶여 있는 것이다.



3장에서는 청결과 위생이 문명의 기호가 된 원인을 찾는다. 서구에서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고 백신이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다. 인간과 미생물의 투쟁이라는 형이상학적 이미지와 병리학적 메커니즘이 압축적으로 한국에 이식, 전파된 것이다. 그 결과 건강한 신체와 애국적 열정은 분리할 수 없는 통일체가 되었다. 서구인과 동일한 문명화된 신체. 근대적 신체에 대한 표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여성, 고아, 매춘부 등은 열등한 처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병리학과 기독교가 만나는 접점에서 인종을 불순하게 하는 '병인'들을 배제하고 도려내야 하는 인종주의, 민족주의의 폐쇄 회로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근대 계몽기(1894-1910)는 우리의 근대가 시작된 기원의 공간이다. 이때 형성된 지층 위에 20세기가 켜켜이 쌓여 왔다. 하지만 탄탄한 기반 위에 쌓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의 사유체계와 삶의 방식, 규율과 습속 등이 민족과 근대의 유착 속에 갇혀 한정된 시야 안에서 사유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빈약한 틀이 만들어진 배경을 세 가지 열쇳말을 통해 알아본 것이다. 저자는 이 틀 바깥으로 확장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미숙이 쓴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에서 답을 찾기 바란다. 아, 이 책은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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