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발여정-DMZ 콘텐츠 1. 가지가지도감 두 번째 이야기 <비무장지대>
냉전시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장벽 사이, 인간의 침입이 없는 120km의 공간이 야생 토끼들의 천국이 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Rabbit à la Berlin, 2009>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크게 두 가지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첫 번째는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놓인 작고 힘없는 개체들. 두 번째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 난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냉전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 초기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게 되자 어디서는 야생동물이 늘어났다더라, 산에 있던 동물이 도심으로 내려왔더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본다면, 동물들이 인간들을 무서워할 만도 하고, 최고의 포식자인 인간이 없으니 동물들이 많이 띄게 될 법하다.
DMZ도 분단의 상징으로만 읽히던 시기를 지나, 이제 멸종위기종의 천국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야생 토끼의 천국이었던 베를린 장벽 사이 공간처럼, 인간의 침입이 제한된 DMZ의 공간은 야생동물들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 의심스럽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남북관계가 조금만 괜찮아 보이면 민통선 안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니 땅을 사야 한다느니 얘기를 하지만, 거기 있는 야생동물들은 어쩌지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DMZ가 개방된다면 야생동물들은 큰 시련에 닥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너무 야속하게 들릴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그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어쩌면 그냥 버려진 땅에 가깝다. 그들은 잠시 안전해 보이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는 베를린 장벽 속 토끼처럼 힘없는 존재다. 그들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실제로 찾아가 볼 수 없는 곳의 생태계에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처음 가진 이들에게 좋은 책을 찾았다. DMZ 속 동물들에 관한 책 "가지가지도감". 기분 좋아지는 그림체와 문체, 그리고 패턴 일러스트. 귀염귀염 한 요소들이 구석구석에서 가지가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 DMZ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거나 도시화로 인해 갈 곳 없는 동물들을 담고 있다. 지나치게 계몽적이거나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서 더 좋다.
사실 우리가 거기에 사는 야생동물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딱히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엔 그렇게 보이듯 말이다. 하지만, 많이 봐 오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중요한 상황에서 최선의 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잠재력... DMZ도 머지않아 중요한 상황,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될 거다. 무조건 "자연보호! 야생동물보호!"를 외치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에게 유토피아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모두에게 최선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야생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우리는 독립출판팀 사만키로미터의 가지가지도감 두 번째 이야기 <비무장지대>를 파발여정-DMZ의 첫 번째 콘텐츠로 소개하고자 한다. 관찰에 관련된 콘텐츠로, 여행 속에서 동물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자연스레 동물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되었으면 한다. 가지가지도감은 포털사이트 검색이나, 다수의 독립출판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만키로미터
이메일 40000km_zine@naver.com / @40000km_zine
<가지가지도감 이연우 작가와의 인터뷰 문답>
인터뷰 시작시간 :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7시 50분 오후
연령대 : 20대
집으로 느껴지는 나라 : 한국, 서울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
노랑
어렸을 때 살던 집에 엄마가 손으로 직접 칠해서 만든 노란색 벽이 있었다. 그 집에서 나의 자아가 많이 형성이 되기도 했고, 그 집이 나의 토템과도 같은 존재여서 그런지, 노란색을 많이 좋아한다.
시기에 따라서 좋아하는 색이 달라지는데 작업이나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색인가?
늘 노란색을 좋아하고, 나아가서는 노란색과 잘 어울리는 색을 좋아한다. 사실 노란색은 많은 색들이랑 잘 어울리기도 하는데, 마치 나의 퍼스널리티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딜 가든 적응을 잘하고 잘 섞여서 사는 사람.
자신의 일상?
꽉 안 차 보이지만 꽉 찬 일상
여유롭여 보이는 프리랜서이지만, 사실 주말이 따로 없고 거의 365일 일을 하는 것 같다. 늘 하는 일을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사는 게 꽉 차 있다 라는 느낌이 든다.
가지가지도감의 성격?
보기에는 귀엽지만 뼈 있는 책
가지가지도감은 말투도, 그림도 아이들을 위한 것 같은 귀염귀염 한 스타일의 책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읽어보면 왜 이 동물들이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 외래종의 식물들이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등의 역사적인 이야기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해서 이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는지와 같은 뼈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가지가지도감의 분위기?
계절로 치면 봄에 잘 어울리는 책. 겉은 부드럽고 안에는 단팥이 들어있는 빵이나 찹쌀떡 같은 책.
가지가지도감을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가지가지도감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겠다는 뜻으로 네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제작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버려져있던 특정 공간을 이루고 있는 아이템들을 선정해서 그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다. 네 명 모두 거대한 이야기보다 소소한 이야기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한 기획이다. 주제를 동식물로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주제가 될 수 있었지만, 모두 동식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첫 번째 책은 식물로, 두 번째 책은 동물을 주제로 만들게 되었다.
DMZ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
관심사와 시기가 잘 들어맞았다. 이 책을 기획하던 시기엔 남북의 사이가 좋아지는 중이었다. 대통령과 위원장이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는데, 그중 하나로 DMZ의 지뢰들을 없애고 활용하는 방안이 오고 갔었다. 그때 마침 작업할 주제를 찾고 있는 중이었고, 첫 번째 책은 식물에 대해서 했었으니, 동물에 대해서도 다뤄보자 라고 얘기가 나오던 중이었고, 디엠지가 맞아떨어졌다.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공간으로 우리의 콘셉트와도 맞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디엠지 안에 사는 동물들을 우리가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반달가슴곰은 꽤 유명해졌지만, 저어새나 맹꽁이만 하더라도 서울시에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개리라는 오리 또한 들어볼 일이 없지 않았나? 한국에 살고 있는 토종 물고기, 동물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작업을 하며 알게 되었고, 점박이 물범 같이 외국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한국에 있는 동물들도 많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번 책을 만들면서 스스로도 더 디엠지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디엠지라는 공간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지만 그 안에 구성원들이 디엠지를 더 매력 있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다가가지만, 그 안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매우 많다. 그런 것들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즐거웠던 작업이었다.
DMZ를 바라보는 이연우 작가의 모습?
친척동생
나는 전쟁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디엠지가 지금의 모습처럼 지뢰가 있고 그냥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만들며 ‘아 나한테 이런 친척동생이 있었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친척동생처럼 내가 지켜주고, 아껴주고 싶은 공간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거다. 제발 해치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지가지도감을 통해 소통한 사람이 있다면?
박사님들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요섹남'처럼 섹시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엠지의 동물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분들이 몇 분 안 계시고 그 몇 명이 이 대한민국의 모든 디엠지 동물들을 관리하고 계신다. 그분들 아니면 물을 데가 없었다. 귀찮을 수 있는 인터뷰와 교정을 자기 일처럼 열정적으로 해주셨다. 또 자신들을 대신해 이런 걸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
어릴 때 살던 춘천에는 삐라를 주워오는 함이 있었다. 통일 포스터 만들기 대회, 글짓기 대회, 통일 그림대회, 표어대회 같은 것들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릴 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무조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두 나라로 존재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히려 한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로가 반역자인 것처럼 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형제의 나라처럼, 다른 나라이되 소통과 무역을 하며 서로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어떤 문제들이 있을지 잘 모르는 한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DMZ 공간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아직 우리나라에는 자연과 동식물을 위한 공간들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동물을 관람하는 것보다는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사파리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멸종위기로 몰아간 동물들을 다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간이 되어, 추후에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자연을 위한 젖줄과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인터뷰 종료시간 : 2020년 8월 29일 8시 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