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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Jul 21. 2022

조해진,이라는 소설가

<환한 숨>(문학과지성사, 2021)


쉴 틈 없이 단어를 잇고 문장을 써 일정한 분량을 채워야 하는 소설 쓰기는 어딴 작가에게는 구도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독자 역시 쉴 새 없이 이어진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시간을 들여 인내를 갖고 읽는다. 단편 소설의 중간 단락은 숨 돌릴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고 한 편이 끝나야지 겨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다. 결국 소설가는 문장을 이어 계속 독자를 붙들어 매야 한다. 독자는 기꺼이 작가의 문장에 붙들릴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 사이 적절한 밀당, 오가는 기운이 맞아야 소설 읽기는 리듬을 탄다. 소설가는 무의미하게 이어지는 문장이 주는 권태가 독자에게 어떤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나름의 사유나 삶의 자리에 대한 철학이 없는 빈 언어로 이야기를 가장한들 읽힐 리가 없다.




무심하게 툭툭 던져 놓아 눈에 띄고 맘을 툭툭 건드는 조해진의 문장들이 무척 맘에 든다. 소설 읽다가 인덱스를 군데군데 붙이기는 오랜만이다. 통상 단편 하나 분량을 집중해서 읽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읽어도 읽어도 지루해서 이내 집중이 풀어지는 소설집이 많은데 조해진의 문장은 몰입하게 만드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다. 글감이라고 하는 소재의 급진성 탓이 아니다. 최근 그런 류의 소설을 제법 읽었지만 소설에서 뼈아픈 소재만으로 사람을 붙들 수는 없다. 문장의 역동성은 어떻게 확보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내겐 그것을 풀어 설명할 수 있는 비평의 언어가 없다. 그렇지만 조해진의 소설이 꽤 근사하고 매력 있다는 건 알겠다.



조해진이 소설을 빌어 구사하는 문장 속에 담긴 몇 몇 언어는 어른답지 않게 풍요롭고 깊다. 조해진이 이어가는 문장은 촘촘하고 쉴 새 없지만 그 사이 머금은 깊은숨 혹은 침묵이 느껴진다. 그게 비결일까? '묵직한 무엇'은 그 침묵 탓이라 짐작한다. 촘촘한 문장 사이 그 너른 여백은 무엇으로 빚어내는 걸까? 조해진은 진심으로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어떤 문장은 끝내 부재하기에

망각될 권리도 갖지 못하지만

때로 그것이 질서가 되기도 한다"

(위의 책,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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