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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Jul 22. 2022

<피그>, 상실에 관한 어른스러운 우화

<피그>(마이클 사노스키, 2021)


1

'시간이 '이라는 무심한 말이 있다. 상실의 아픔, 상처는 시간이라는 처방을 통해서만 아물 '' 있는 병증이다. 누군가의 상실 앞에서, 곁에 있는 사람이   있는 위로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이다.   시간에는 상냥하고 사려 깊은 기다림()  위로다. 곁에 있는 사람이 해줄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픈 사람 앞에서 ()력함을 느끼고  닿지 못하는 마음 씀씀이로 같이 휘어지기 마련이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그런 아픔을 헤아리는 상냥한 인내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가 마주하는 시간의 양과 흐름은 다르다. 누군가는  껍질 속에 갇혀 영영 헤어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이해(한다는 수사) 때로 폭력이다. 누군가의 아픔에 대한 이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아픔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곁에서 그저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수밖에 없다. 영화 <피그>  역동을 섬세하게 그린다.



2

작은 영화가 크게 울린다. 영화는 보기 좋게 불친절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롭(로빈 펠트, 니콜라스 케이지 분)의 과거는 조각조각 사건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난다. 작은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고 있는 이 영화의 큰 울림은 전적으로 '카메라의 사려 깊은 움직임' 탓이다. 카메라가 인내를 가지고 인물 곁에서 처연하게 기다린다. 인물을 통해 사건을 스펙터클 하게 전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숨 쉬듯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공기, 인물이 들이키고 내 쉬는 숨소리마저 고스란히 담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카메라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데도 영화는 생물처럼 총총총 살아 움직인다. 카메라가 인물과 함께 숨을 쉬면서도 인물의 아픔을 억지로 어루만지려고 작위(오버)하지 않을 때 어떤 영화적(시네마틱한) 순간이 탄생하는지를 영화 <피그>는 탁월하게 보여 준다. 촬영 감독 패트릭 스콜라에게도 영화 <피그>는 색다른 필모가 아닐까 싶다. 


"나를 원망했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화 중)



3

이 영화를 보기 전 니콜라스 케이지라서 내심 걱정이 앞섰고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의 파산과 여러 번의 결혼에 따른 위자금 등등으로 시답잖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 인생의 나락을 걷고 있었다. <콘 에어>의 니콜라스 케이지를 떠올리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씁쓸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불현듯 니콜라스 케이지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1995)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니콜라스 케이지 인생과도 닮은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는 원래 상실과 허무를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그는 입봉(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소품 같은 작품에 들어가 마음껏 에너지를 뿜어냈다. 놀라운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보여준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을, 얼굴의 풍경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실의 아픔으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몸을 통해 날 것 그대로 뿜어 나온다. 클로즈업을 견디는 그의 얼굴은 스크린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 댄다.



4

영화의 초반, 애완(?) 돼지를 근경으로 오두막 문을 사이에 두고 롭과 겹쳐 잡은 둘 사이 행복한 시절의 카메라 숏은 새뜻하다. 짧은 순간 둘이 만끽하고 있는 행복을 그 보다 더 잘 표현한 숏은 없다. <흐르는 강물처럼>(1993)의 낚시 장면만큼이나 아름다운 장면인데 검색해도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다. 낮게 내려앉은 카메라가 돼지의 눈높이에서 차경으로 밖에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겹쳐서 찍은 풍경화 같은 숏, 액자로 만들어 걸어 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숏이었다. 결국 상실을 겪을 대로 겪은 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상실 끝 값싼 구원은 없고 그저 비루한 일상이 지속될 뿐이다. 롭의 시간은 15년을 훌훌 뛰어넘어 다시 흘러가리라. 다시 돌아온 제자리, 위로는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저 흐르는 강물 같은 '과정'이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안고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영화 <피그>는 뻔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겪은/ 겪을 인생의 역동을 설득력 있고 먹먹하게 그린다.


0

영화 <피그>는 솔직하고 정직하며 진솔하고 단단하다. 게다가 세련되면서도 어른스럽다. 이런 좋은 영화 현재 관객수가 고작 11,726명이 전부다. 이게 시퍼렇고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세계 유수의 9개 영화제는 9개의 연기상을 그에게 안겼다. 영화 <피그>를 통해 니콜라스 케이지가 보란듯이 영화적으로 연기적으로 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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