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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2. 2022

<내사랑>, 사랑이 떠나가네...

<내 사랑(Maudi)>(에이슬링 월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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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영화 <내 사랑>에서 에단 호크는 '연기'한다. 샐리 호킨스가 모드를 연기하는 게 당연한데 에단 호크가 에버렛을 연기한다. 연기하려 애쓰는 에단 호크(의 연기)가 좋았다. 샐리 호킨스가 기대를 비웃듯 눈부시게 연기했다면 에단 호크는 절절매고 끙끙댄다. 목소리 톤을 바꿔 연기하고 에버렛의 무뚝뚝함을 표정으로 연기하고 대사도 연기하듯 내뱉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1990)를 시작으로 벌써 중년이 된 에단 호크는 아직도 연기 중이다. 길을 찾고 있는 연기, 에단 호크는 여전히 망설이고 서성인다. 능글맞았던 <메기스 플랜>과 압도적이었던 <본 투 비 블루>를 생각하면 어색할 정도다. 그래서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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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영화가 실화라고 밝히는 순간 관객은 태도를 고쳐 먹고 무엇에든 사로잡힌다. 하지만 영화 <내 사랑>은 실화라는 사실을 빌미삼지 않는다. 연출의 자신감 혹은 사려 깊음, 뒤늦게 알게 되서 좋았다. 영화 <내 사랑>에 의하면 사랑이란, 멀쩡한 몸에 깃들어 자라지 못한 마음과 섬세하고 또렷한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이, 서로에게 닥친 현실을 참고 버티는 것이다. 행복은 쉽게 휘발했을테고 실제는 더욱 비참했을 것이다. 종교적 신성이 힘을 잃은 자리에 예술과 질병이 대신 그 자리를 꿰어찼다. 군침도는 두 가지 소재, 감독은 계절과 세월의 변화를 담담하게 그리고 예술과 질병을 상투적으로 낭만화하지 않는다. 모드와 에버렛의 시간은 어느새 흐르고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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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모드(샐리 호킨스)의 움직임을 따라 흐른다. 길 위에서•수레 위에서•집안에서 붓을 잡고 모드는 쉴 새 없지만 불편한 몸 탓에 겨우겨우 움직인다. 운동(움직임)이 정서를 자아낸다. 카메라는 그림 그리는 순간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바싹 다가가고 넓고 탁 트인 지평선 길 위의 모드를 멀찍이 떨어져 비춘다. 모드의 움직임(운동)을 중심축으로 둔 서로 상반된 숏과 씬은 그윽하고 아련하다. 기막히게 근사한 시선, 채색하듯 움직이는 카메라는 모드의 붓질을 닮았다. 사랑은 끝끝내 누군가 떠나거나 죽어야 이루어진다. 사랑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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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 달린 카메라를 켜고 살며시 엔딩 크레딧을 기다렸다. 삽입곡 목록을 찍었다. 아뿔사, 흐리다. 음악도 좋았는데 특히 기타 현을 튕기고 잔향을 한껏 살린 선율이 좋았다. 멜로는 역시 음악이다. 음악이 장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름답기도 했지만, 음악이 나타나고 물러나는 지점을 사려깊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모드(샐리 호킨스)가 숨을 거둔 순간 음악도 숨을 죽이고 침묵이 흐른다. 음악이 멈춘 후 찾아온 침묵이 조금 더 길었으면 싶을 정도로 좋았다. 상투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멜로 음악 작법의 패착을 <내사랑>은 가볍게 건너 뛴다. 영화 음악은 넣을 곳 만큼 뺄 곳, 기다릴 곳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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