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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2. 2022

<일대종사>, 왕가위식 작별 인사

<일대종사>(왕가위, 2012)


책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상념에 잠길 때마다 꺼내서 보고 또 보는 영화들이 있다. 어디쯤 늘 거기 있는 장면을 찾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버릇, 뻔하지만 좋은 영화는 세월을 비껴간다. 세월을 비껴간다는 것은 유행을 타지 않아 세월을 이긴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또 새로운 게 새록새록 보이는 영화,가 내게는 세월을 비껴가는 영화다. 몇 번을 돌려 봤는지 모르겠다만 왕가위의 <일대종사>가 또 보고 싶었다.



영화 <일대종사>는 왕가위 버전 엽문 일대기다. 이렇게 슬프고 애잔한 영화였다니, <일대종사>는 ‘왕가위 스타일’이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며 남긴 마지막 작별 인사다. ‘마지막’은 늘 아쉽고 짠하다. <일대종사>를 연출하며 왕가위는 '여기서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이제는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마지막 안간힘이 느껴졌다. 궁이와 엽문은 (둘을 합쳐 놓으면) 왕가위 자신을 닮았다. 왕가위는 엽문을 빌어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대종사>는 그간 왕가위 영화들의 에필로그다. 



다시 봐도 일선천(장첸) 이야기는 생뚱맞다. 잘려 나가서 그렇단다. 잘라낸 일선천과 엽문(양조위) 결투 장면이 담긴 감독판을 보고 싶다. <일대종사>는 무협이라는 외피에 멜로라는 속살을 담아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 무상은 의미 없음이나 후회가 아니라 인생 그 자체라는 것, 왕가위도 세월을 이길 순 없다. 전혀 새롭던 것이 낡고 쇠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왕가위 시대가 '이렇게' 작별을 고한다.



이루어 질 수 없었는 또 하나의 사랑, <일대종사(Grand Master)>는 왕가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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