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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8. 2022

조르조 아감벤,이라는 미학자

<빌라도와 예수>(꾸리에, 2015)



예루살렘 성전 양의 문 근처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연못 물이 동할 때 몸을 담그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고 했다. 원근각지에서 병자들이 몰려들었다. 제국의 지배 원리를 오롯이 내면화한 예루살렘 성전 속죄의 문 곁 은혜의 연못가를 38년 동안 앓고 있는 병자가 황망히 배회하고 있었다. 예수가 물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는 승자독식에 대한 문제 제기와 구조적으로 나을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는 잘라 말한다. “요(이불)를 들고 일어나 가라!” 그날은 '하필/ 일부러' 안식일이었다.


제국의 법과 종교 권력의 (율)법은 구원하는 예수를 기소한다. 법은 사람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역사 속 어떤 법 집행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땅의 법은 사실과 정의에 입각하되 진리/ 구원에 관심이 없다. 그 정의는 권력을 위할 따름이다. 그래서 새-시대를 예고하는 생명(력)의 고양은 법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법은 생명(력)이 당혹스럽다. 공권(력)은 체제와 기득권 유지가 목적이고 법은 재판/ 심판할 따름이다. 제국과 법, 제국의 법이라는 정치 철학의 테제, 정치 신학이 돌파해야 할 난제, 신정 정치의 기획이 해명해야 할 숙제.


“여기 있지 않은 왕국의 진리에 관해 지금 여기서 증언한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하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을 [오히려] 우리가 심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덧없음 속에 있는 세계는 구원이 아니라 정의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가 정의를 원하는 이유는 구원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할 수 없는 피조물이 영원한 것에 대해 판결을 내린다-바로 이 역설이 결국 빌라도 앞에 선 예수를 돌연 끝내 버린 것이다. 여기가 십자가고, 여기가 역사다.”(<빌라도와 예수>, 꾸리에, 2015, 98쪽)



이 책은 문제적이고 오롯하다. 사려깊게 던지는 아감벤의 질문,은 물론이거니와 조효원,의 옮긴이의 말과 윤인로,의 보론도 그렇다.




한국 출판계는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거의 모든 책과 신간을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감벤(철학)의 수용은 진지하고 절실하고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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