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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술 Jan 25. 2017

기이한 술장사

흥부도 사래친 술 장사

흥부 자식 스물다섯이 밥때가 지나면 "오매 밥, 오매 밥"을 비올때 방죽 개구리떼처럼 읊어대자, 흥부 아내가  흥부에게 "각결(却缺)의 아내 같이 밭이나 매어 볼까. 양홍(梁鴻)의 아내 같이 물이나 길어볼까. 직녀성에 걸교(乞巧)하여 침자품을 팔아 볼까. 탁문군의 본을 받아 술장수를 하여 볼까."라며 술장수를 해 볼까 묻는다. 이에 흥부가 깜짝 놀라 "자네 그게 웬 소린가. 죽었으면 그저 죽지 자네 시켜 술 팔겄나. 가사는 임장(任長)이니 내 나서서 품을 팔 터이니 자네는 집에 있어 채전이나 가꾸고 자식들을 길러 내소."라며 사래친다.

전통사회에서 술 파는 직업은 죽지 못해 하는 마지막 직업이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흥부마저도 하지 않으려 했던 직업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술집이 어떠했길래 흥부도 기피했을까?

전통 술집을 몇 종류 살펴보자. 목로에서 앉지 않고 서서 잔(盞) 술만 마시는 선술집이 있는가 하면, 앉아서 먹되 병술과 안주를 먹는 내외(內外)술집, 막걸리를 사발로 파는 막걸리집, 술만 만들어 다른 집에만 파는 바침술집, 이 밖에도 지금의 유흥 음식점격인 여자를 두고 즐기며 술을 마시는 색주가(色酒家)와 기방 등이 있었다. 이중 흥부 아내가 하려던 술집은 몰락한 양반집 아낙네가 운영하는 내외주막이었을 것있다.

내외주가(內外酒家)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술을 팔게 되어도 얼굴이나 신분을 숨겨 장사하는 내외주가는 접대부가 없이 술을 순배로 파는 술집이다. 내외주가는 몰락한 양반집의 아낙네나 과수댁이 운영하였다. 남녀가 유별한 유교사회에서 양반집 아낙네나 과수댁이 어찌 남자를 정면으로 상대하면서 술을 팔 수 있었겠는가? 이 곳이 내외술집이라 이름 붙게 된 것은 술집 주인 여자가 외간 남자와 바로 얼굴을 대하지 않고 내외를 하며 파는 술집이기 때문이다. 이 내외술집은 외형으로 보면 보통 가정집이지만 대문 옆에 '내외주가(內外酒家)'라 써서 술병 모양의 테를 둘러 붙여두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술집으로 알고 찾아들게 된다.

내외주막 1

내외주막에 들어가서 중문을 약간 두드리면서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르면 안에서는 식모나 소녀를 시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고 묻는다. 손님이 술 마시러 왔다고 하면 식모가 대문 안 중문간에 세워둔 돗자리와 방석을 펴놓고 들어가 매운탕과 묵, 또는 편육(片肉)을 차린 간단한 술상을 내어 놓는다. 옛날에는 남녀간의 예의가 엄하여 여자가 가까운 친척 외에는 절대로 대면하여 말을 하지 않았고 내외(內外)라 하여 엄하게 분별하였는데 이 때 내(內)는 여자요, 외(外)는 남자를 가리킨다. 또한 말도 단둘이 있으면서도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 꼭 누구를 통해서 하는 식의 간접대화를 하였다. 이처럼 옛날의 지체 있는 집안의 여자들은 생활이 쪼들려 비록 술장사는 할지언정 예의는 준수하면서 영업을 하였던 것이다. 내외술집이란 결국 내외를 분별하면서 술을 판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내외주막 2

손님이 주막에 와서 술을 청하면 주인은 안방에 앉아 "손님께 거기 있는 자리를 깔고 앉아 계시라고 여쭈어라." 소리한 후  "술상 내보낸다고 여쭈어라." 소리하여 안방 문 앞에 술상을 내밀어 놓는다. 이렇게 주인과 손님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술상과 술주전자가 들고 난다. 술상이 파하면 손님은 "술값이 얼마냐고 여쭈어라." 물어 답하는 만큼의 술값을 술상에 놓고 간다. 주인은 여전히 방에서 "다음에 또 들르시라고 여쭈어라." 소리한다. 술 파는 직업을 죽지 못해 하는 직업으로 인식하는 사회 풍토가 가공의 심부름꾼을 두고 의사 소통 하면서, 손목만 들락날락하는 기이한 술 장사를 만든 것이다. 이런 내외주막은 서울 장안에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코메디 프로의 한 장면 같은 내외주막의 풍경은 외식유흥(外食遊興)을 부덕하게 생각했던 유교문화 윤리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헌데 지금은 먹고, 마시고, 놀기까지하는 유흥주점이 도시, 시골을 가리지 않고 넘쳐난다. 맥주 전문점, 와인 전문 레스토랑에 전통주 전문 주점도 성행이다. 술집에는 술 맛을 감별하는 감별사를 두기도 하고,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아주는 전문가를 두기도 한다.

억압이 폭발을 낳았을까?  전통사회가 유흥 극소화의 사회였다면 근대화 이후의 사회는 유흥 극대화의 사회로 변모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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