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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May 21. 2021

거울 닦이

난, 그렇게 생각해

전신 거울 하나가 방 한가운데 서 있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기도 좋고, 자주 쓰는 가벼운 가방을 걸어 놓기도 좋다. 하얀 프레임이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던 거울.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된 거울은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쉽게 닦아내지 못했다. 먼지로 뿌옇게 보이는 모습이 딱히 거슬리지 않았던 것은 어차피 내 모습이니까. 내 모습은 익히 내가 알고 있으니까. 굳이 내 모습을 잘 볼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내 모습 따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먼지 투성이 거울을 그대로 두었다.


그런 거울의 먼지를 말끔히 닦아냈다. 대청소를 하면서 거울도 닦아냈다. 먼지가 거울에서 사라져갈 때 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선명해지는 것을 보았다. 거울의 먼지를 모두 닦아내고 서 있는 나를 보았다. 누구신지?

신기하게도 나 인데, 내가 아니었다. 분명 굳이 닦아내지 않아도 내 모습이야 맨날 똑같지 라고 생각했는데. 선명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랍게도 낯설어 했다. 


얼굴의 잡티만큼 선명해진 나의 눈, 눈동자가 살아있었다. 뿌옇던 거울을 볼 때는 알지 못했던, 내 눈의 생동감을 비로소 본 것이다. 익숙했던 뿌연 거울 속 내 모습이 사실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니! 분명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전혀 달랐다. 선명해진 거울 만큼 선명해진 나의 모습이 내게 어제와는 다른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이미 먼지가 쌓인 채 왜곡된 결과를 가져다 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내가 가진 태도, 방식, 생각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 닦아내야 함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닦아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아닌지. 선명한 모습이 조금은 낯설지 몰라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음에도 사실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눈에 먼지를 씌우고, 그것을 닦아내지 않은 것은 나 였다. 


선명해진 거울을 마주하며, 거울을 닦아 냈든 이제 나의 눈,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태도의 먼지를 닦아내야 할 시간이다. 거울처럼 쉽게 닦이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먼지를 닦아내면 언젠가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곧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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