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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Nov 01. 2020

기록 일기 _ 1일차

[글쓰기 다짐]

11월의 첫 날은 일요일. 어젯밤 과음으로 신음하며 일어났다. 새벽에 깨서 리버풀 경기를 보려했지만,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기에 그냥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역전승 소식에 기분이 흐뭇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경기 다시보기를 재생했다. 그러나 숙취로 인해 경기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를 보고있던 중 나도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뜨끈한 전기장판에 고양이도 몸이 녹은 듯 내 품속에서 잠이 들었고, 엄마 고양이는 더운 이불이 싫은지 침대 가장가리에 널브러져 잠을 청했다. 이렇게 오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오후 2시다. 온 몸은 맞은 듯 아프고, 청소며 정리며 할 일은 많은데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일단 숙취를 위해 라면을 먹었다. 역시 과음 다음 날 해장은 라면이 최고다. 먹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구내염으로 고생 중이라 혼자 밥을 못 먹는 - 어쩌면 안 먹는 엄마 고양이 밥도 챙겨주고, 엄마 고양이 밥을 탐내는 딸 고양이 간식도 챙겨줬다. 고양이들도 배부르니 기분 좋은 듯 하다.


3시가 다 되어 청소를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하며, 재활용도 정리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물걸레질도 하고. 그리고 역시 청소 후 한 잔의 커피는 천국의 맛이다. 좋아하는 중국 드라마 "연희공략"을 다시 보기 하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이 여유! 분명 머릿속에서는 '아직 할 일이 많아. 뭔가를 하지 않고 이대로 오늘을 보내면 시간 낭비한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몸은 '피곤해 죽겠네. 할 일은 나중에 컨디션 좋을 때 하는데 더 효율적이댜.'라고 거부하고 있었다. 어쩌겠어? 이젠 체력이 정신력을 못따라가는 30대 후반인 걸.


4시가 넘어가니 이대로 드라마나 보고 있는 것도 무료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머리는 아팠고, 내 몸이 알콜에 절여진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볍게 겉옷만 걸치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막상 상쾌한 공기를 맞으니 기분이 좋더라. 시원한 가을 공기가 너무 좋다. 약간 쌀쌀한 온도가 개운하다. 음악도 없이 아무생각 없이 그저 정처없이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단풍이 지는 가을에 열심히 걸으면 음악이 없어도 즐겁다. 가로수 길 나무들만 봐도 눈이 즐겁기 때문이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1시간을 걷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지금! 완벽하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고 현실을 원망하며 짜증을 냈다.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변변치 못한 내가 너무 싫어서. 그렇다고 훈훈하고 따뜻한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하나 모자란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막막한 삶을 살 것 같아서 서글프고 가슴이 아팠다. 공무원 시험이라도 볼까해서 찾아간 철학관에서는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니라며. 안 될 거라는 말에 괜시리 의기소침해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너무 싫은 건데, 이 일이 천직이라니! 난 더이상 가르치는 일 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공무원 좀 할까 했더니 아니라니까 '아, 그럼 이제 어쩌지?' 이 생각 뿐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미리 토익 시험 일정도 잡아놓고, 한국사 책도 사놨는데. 의욕이 안 생긴다. 분명 지난 주 까지는 주말까지도 공부하며 한 껏 들뜬 마음과 기대로 가득했는데 말이다. 자기의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만 막상 이런 말을 들으니 열정이 팍 식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그렇게 의기소침한 채 숙취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이 순간. 그나마 즐거운 소식인 리버풀 역전승에 리버풀 팬카페만 들락 날락 하다가 클롭 감독님의 인터뷰에 뭔가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믿음은 항상 우리가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가져오는 것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이유를 찾아줄 수도 있지만, 선수들 스스로가 그들의 욕망을 경기에 투영하고 모든 걸 보여 줄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납득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나? 열정과 욕망을 갖고 살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으면서 왜 나는 안될까 원망만 하고 있을까? 모든 걸 보여줄 결심이 없다면 어느 누가 입발린 좋은 말을 해줘도 딱히 변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제의 내가 참 부끄럽다. 어차피 세상을 불공평한 것을. 왜 불공평하냐고 악을 쓰고 원망하고 짜증내봤자 뭐가 달라지는데. 비록 내가 가진거 없는 초라한 사람일지라도, 나도 나만의 무기가 있으니, 그것을 갈고닦고 나아가 변화하려고 노력해야지. 그래서 어제와 다른 내가 되야지. 그렇게 내 삶을 즐겁고 의미있게 만들어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숙취로 시작해 반성과 결심으로 마무리한 11월의 첫 날.

공무원 시험 준비가 어찌되든, 어떤 결말로 이어지더라도 일단 준비한 것들은 계속 하려고 한다. 

그 길 속에서 또 다른 길을 맞이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아! 한 가지 결심은 했다. 오늘부터 한 달간 매일을 기록해 보기로 말이다. 다이어리는 매일 작성하고 있지만, 글로 남기지는 않았는데, 어쩐지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뤄가면서 조금씩이라도 자신감을 얻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렇게 작은 일부터 습관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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