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선택권이 없어서 약자라고 부른다. 정해진 룰과 시스템에 들어 온 이상 따를 수 밖에 없다면 그는 계속 약자 일 것이다. "
배정 된 장례식 공간은 입구에서 들어 오자 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작은 공간이라는데 7개의 테이블, 유족들의 쉼 공간, 영정 공간 등 어림잡아 20평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큰 공간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여기 2호실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마 나의 "작은" 정도가 통칭하는 "작은"과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곳을 알아 보기엔 영안실 이동도 그렇고 다 거기서 거기 일 거라는 자조 섞인 번거로움이 어쩔수 없다는 마음으로 합리화 하고 있었다.그렇게 아직은 텅 빈 공간에 멍 하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친 이후 두번째 였지만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그때는 부친이 나처럼 그랬을 것 같았다. 멍 하니 모친 영정 앞에 앉아 있던 부친을 보며 나는 부고를 보내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아내가 묵묵히 옆을 지켜 줬고 교회 생활(?)을 잘 했던 모친의 성적표 처럼 교인들이 많이 찾아 왔었다. 무엇보다 직장 동료들이 많이 찾아 온 건 '행운' 이었다 . 코로나로 중단 된 여행업으로 나는 ㅇㅇ시설공단에 근무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끝나고 여행 문이 열리면서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나온 지금은 무직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러니 부고를 보내거나 상조 지원을 기대 할 직장은 없는 것이다.게다가 부친의 교회생활은 '낙제'일 것 같았고 아내는 이제 오지 않는다.
입구에서 누군가 기웃거리더니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상심이 크실텐데 장례식장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2호실은 하루 임대료가 ㅇㅇ만원이고 3일장에 필요한 목록이 여기 있는데 이건 포함 되어 있어요. 목록을 확인 해 주세요 . "
목록 보다 내 눈에는 아래 큼지막히 굵은 돋음체의 "ㅇㅇㅇ만원"이라는 금액에 먼저 눈이 갔다 .
"이게 기본 금액이라는 건가요? 저희는 별로 찾아 올 조문객들도 없는데 여기 영정 화단이라든가 이런건 안했으면 좋겠어요 ."
"아 어디까지나 이건 기본에 포함 된 거라 빼지는 못하세요 ."
"그렇군요 ."
"그리고 여기에 조문객들 음식과 상복, 도우미 아줌마는 별도인데요, 이건 선택 하셔도 될것 같아요. 오실 분들이 많이 없으면 제가 볼때는 첫날은 도우미 쓰지 마시고 셀프로 하셔도 될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모든것을 선택 했을때 이정도는 보통 이라며 내게 전체 합해서 ㅇㅇㅇㅇ만원의 금액이 예상 된다고 보여 주었다.
부친이 병원에 있을때 살던 집에 잠시 들렀었다
부친이 없는 방은 차가웠고, 냄새가 많이 났다. 그 좁은 방에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니고 있었고 침대 맡에 커다란 철제장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하얀 봉투가 보였다 . 마치 장례 비용은 이걸로 하렴 하며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 안에는 ㅇㅇ만원이 들어 있었다. 아마 은행을 이용 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관 하셨던 것 같다.
"도우미는 오늘은 안오셔도 되고 다음날 11시부터 22시까지로 할께요. "
그리고 음식 목록 몇가지 고르고 '확인서'에 서명 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장례가 아닌 장례식"을 해 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2호실로 돌아와 여기 저기 부고를 보내기 시작 했다 .
"소식 들었어요. 형님은 언제 가라고 할까요 ?"
형이 재활 하고 있는 센터의 복지사가 문자를 보내 왔다.
"점심 먹고 보내 주세요. 지금 와 봐야 힘드실테니 천천히 보내 주셔도 되요 .여기 장례식이 끝나면 제가 데려다 주겠습니다."
"네 그럼 택시를 태워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
들은 얘기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오는데 그 영혼은 그 삶의 딱 반 정도의 나이 40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정말 그런 모습으로 모친은 발인 다음 날 꿈에 나타났었다 . 어딘가 떠나는 듯 바바리 코트를 입고 여행 가방을 들고는 어느 바람 부는 부둣가 앞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서 있었다 . 걱정 가득 찬 모습으로 .....
영정 사진을 준비 못했던 나는 부친의 방을 뒤지며 사진을 찾았지만 최근의 사진이 없었다 . 그러다 모친이 있던 방안에서 두분이 나란히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발견 했는데 아주 오래 전 40대의 모습 이었던 것이다 . 부친의 40대 모습이라니 .... 웃음기를 머물며 자신감에 가득찬 표정 ... 낯설기만 했지만 나의 아버지가 맞았고 한시대를 살았던 모습이니 영정 사진으로 한 들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