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모먼트 1 - 네카라쿠배를 거치며)
브런치에서는 최대한 일상의 주제 혹은 철학에 맞닿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 최소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사색을 글감으로 제외하기에는 소재의 3분의 1이 낭비된다. 그리고 가끔 일에서 얻는 소소한 깨달음은 직장생활을 하는 꽤 재밌는 요소 중 하나다. 오늘부터는 간간히 본업 모먼트를 소주제로 써볼 생각이다. 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지 않으니 일기처럼 편하게 쓰면 될 것 같다.
우선 나의 본진에 대해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네카라쿠배'다. 생소할 수도 있지만 IT업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씩 들어봤을 말이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 배민의 앞글자만 떼어와서 만들어낸 신조어인데 미국의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규모와 수준은 차이도 있고 요즘은 네카라쿠배당토 등등 순위변화가 많다)
나는 네카라쿠배 중 3개 이상의 회사를 거친 기획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과인이다.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는 약 2년 정도이니 기획자는 거쳐가는 역할이 되겠지 싶다. 네카라쿠배 중 3개 이상을 거쳐온 사람은 나 말고도 꽤 많을 것 같다. 물론 대다수가 개발자이겠지만 기획자도 상당수가 되지 않을까? 다만 각 회사를 각각 다른 직무로 거쳐온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고 질문해 보면 그건 좀 희소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시작은 영업으로 해서, 운영, 신사업 기획, 전략, 지금은 프로덕트를 담당하다 보니 직업 정체성을 말할 때는 참 곤란하다. 그래서 그냥 문과인 정도로 나 자신을 칭하고 있다. 조금 더 자존감을 살려서 나 자신을 칭해보면 '일터의 이야기 꾼' 정도가 아닌가 싶다. (소방관님의 어린이집 방문 이벤트라도 있는 날에는 아들의 끊임없는 아빠의 정체성 질문에 큰 곤란을 겪는다.)
조금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면 네카라쿠배 이전에는 인턴 경험까지 포함하면 삼성과 LG를 각각 다녔다. 이 정도면 부적응자 느낌일까? 싶기도 하다가도 내가 처음 이직하는 시기에나 인생에 한 두 개의 회사를 다니는 게 상식이었다면 지금은 나 같은 커리어가 꽤 선구자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될 때도 있다.
어쩌다 가장 보수적인 무역 업계에서 IT업계로 넘어가게 되었을까? 차차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그 무엇도 계획된 것은 없다. 그저 어쩌다 보니 Incoterms를 부르짖던 무역 영업 사원이 프로덕트 기획자가 되어서 CX (Customer Experience)를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처음 쓰는 본진이야기여서 사설이 길었다. 오늘은 이 다양한 경험에서 오는 하나의 짧은 깨달음이 있어서 글을 쓴다. 아무래도 다양한 관점의 업무를 경험하다 보니 남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가 많다. 정확히 표현하면 남들이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이 못 보는 다른 특정한 집단의 특수성이다. 지난번 어느 글에서인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핵심은 포용력이 아니라 특수한 집단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말과 한국말로 대화한다는 간단한 가정에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애초에 상대가 한국말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말짱 황이다. 기업의 핵심은 분업이고 분업과 분업 사이에는 서로 다른 언어만큼의 차이가 있다. 어쩌면 언어 차이가 오히려 단순하다. 특수성이 있는 분야의 특수한 지식은 깊어질수록 상식에서 벗어난다.
모두 평소에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 무언가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은데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몰라서 전제의 전제의 전제를 쌓아서 이야기하다 보면 핵심 문장은 5 단어인데 10 문장을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특수성을 짧게 설명하면 바로 이것이다. 그 깊이가 깊어지면 여러 가지 전제를 가지고 사고하게 되고 그것을 모두 알고 들을 때는 '음 이야기가 꽤 깊어지는구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결과 값만 보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싶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러한 복잡하게 꼬여버린 사실은 그 특수한 분야에서는 '상식'이 된다.
사업을 영위하는 시장에 따라서 상품은 모두 다르다. 다만 일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산업에 한정해서 생각하면 서비스가 해야 하는 것은 휴먼 스케일 기준으로 '상식적'인 것 들이다. 다른 말로 인간이라면 응당 바라는 것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답인 경우가 많다. 물론 상식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지금 말하는 상식은 상식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상식이 한없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정말 상식적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의외로 서비스가 상식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평소 경험만 생각해 봐도 바로 답이 나온다.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쓰다가 말도 안 되는 주문 취소가 된다던지, 아니면 단지 물건 3개만 시켰을 뿐인데 다음날 커다란 박스 3개가 문 앞을 꽉 막고 있다던지. 기업의 전략부서는 전략이라는 특수성 위에서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려고 고민하지만 현실의 과제는 문 앞을 가로막은 박스 3개다.
허무주의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서비스의 극단은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탁월함이라는 것도 상식을 만족시킨 후에 그 상식에서 극단을 추구하는 분야가 된다. 처음부터 탁월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분야의 상식에 맞춰서만 시작해도 중간은 할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회사는 의외로 상식적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다양한 상식과의 싸움에 있다.
비즈니스에서의 상식. 프로덕트에서의 상식. 운영 관리의 상식. 회계의 상식. 재무의 상식. 법무의 상식. 심지어 사내 정치의 상식 등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며 비상식적인 서비스가 오픈한다. 비정산적인 서비스는 마치 만화 호문클루스의 욕망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특수한 부분만 비대하게 그려진 만화에서의 캐릭터처럼 그 회사에서 가장 힘이 센 분야의 상식이 극대화된다. 간혹 기획자들은 어떤 회사의 서비스가 새로 출시되면 이 관점에서 토론하기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 타일러 씨가 스타벅스에서 사이렌 오더로 인해 손에 든 샌드위치를 점원에게 빼앗겼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책을 만들어낸 상식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이런 비상식적인 서비스에 고객이 불만을 쏟아내면 제각각 본인들은 문제를 풀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문제를 풀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반에 속한다. 보통의 경우 '아 그거 이상한 거 아는데, 시스템을 고치기엔..' 등의 말이 나온다. 결국 '나도 알아. 근데 그거 누구도 안 고치려고 하는데. 난들 안 하고 싶었겠니?'라는 말이겠다.
이렇게 대답한다면 질문자는 할 말이 없다. 그것이 보통의 직장 생활이고 삶의 일반적인 모습 아닐까? 다만 여러 회사를 지나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그중 아주 희박하게 어떤 회사는 그 휴먼 스케일에 의거한 상식에 목을 매고 달려든다. 혹은 달려든 적이 있다. (먼 과거에)
승자가 되는 기세 위에 있는 회사의 특징은 각 구성원이 서비스의 상식을 잘 숙지한다. 그것은 특별한 목표점에 대한 숙지가 아니라 상식에 바탕에 대한 것이다. 결국 내가 속한 부서의 상식이 아니라 휴먼 스케일의 상식이다. 서비스의 상식이 법무팀의 머릿속에도 자리 앉아있을 때 난 그 회사가 성공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성공은 구성원에게 인생에서 꽤 두둑한 보상을 챙겨준다.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