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이는 무엇이 불안하고 우울한 걸까. 마음이 아픈 딸을 어떻게 대해야 될까. 겉모습은 활달하고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아이이다.
미국 우울증 광고가 생각난다. 축구장에서 두 친구가 응원을 하고 있다. 한 명은 웃고 일어나서 응원하며 즐거운 듯 환호하고 있다. 그에 반해 다른 친구는 축구를 보면서도 인상이 굳어진 채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무표정으로 앉아있다. 화면이 바뀌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겁게 응원했던 친구는 보이지 않고 무표정인 친구만이 앉아서 축구를 보고 있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 간 텅 비어버린 친구의 옆자리가 보인다.
사람들은 이 광고를 보고 무표정한 친구가 우울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걸로 상대방의 많은 것을 판단한다. 각자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이 광고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딸의 치아 부정교합 때문에 치과 상담받으러 동행하기로 했다. 부평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연이에게 물어보았다.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병원까지 갈 결심을 했어?"
"대학1학년 때 학교에서 실시하는 심리검사가 있어서 그걸 받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어. 이번에는 꼭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가 제일 불안한 거야?"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한다. 굳이 지금 배우고 있는 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일 외에는 생각해 본 적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럼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 봤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자살 시도는 안 해 봤지만 죽고 싶다고 마음이 들었던 건 초등학교 때부터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잘 살피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나연이가 초등학교 시절 내가 불안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엄마를 봐 왔던 딸은 얼마나 불안한 날들을 보냈을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아빠 때문에도 불안하다고 했다. 큰 아빠처럼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까 봐 아빠도 그렇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런 말들을 담담히 꺼내는 딸 앞에서 불안한 시절을 알기에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약 잘 먹고 치료 잘 받으라는 말 밖에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병원까지 갔다는 건 우울증을 방치하지 않고 고쳐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믿는다. 나연이가 약 잘 먹고 치료 잘 받으면 분명히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