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어느 날 세 식구 식탁에 앉아 돈가스를 배달시켜서 먹고 있었다. 나연이가 늦길래 전화를 했다.
"어디야"
"집 앞. 금방 들어갈게."
"왜 늦었어?"
식탁의자에 앉으며 "정신과 다녀왔어"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순간 훅 무언가가 내려앉는다. 당혹스러운 내 첫마디 "진짜야?" 하는 물음에 딸은 울면서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라고 말한다.
몰랐다. 나연이처럼 밝은 내 딸이 우울증이라니. 사람일은 모른다 하더니 내 딸이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유가 뭔데?"
"불안하고 우울해서"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딸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부터 어릴 적 불안정한 가정환경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 내가 뭔가 잘 못 한 것 같다.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라고 신경정신과 병원을 가면 학생부터 2030까지 엄청나게 사람 많다며 남편을 안심시켰다.
나연이가 잘 못 되면 어떡하지? 이 생각만 머리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우울증을 앓던 사람의 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음이 아픈 나연이를 어떻게 대해줘야 할까. 엄마인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잡다한 생각들로 어지럽다. 잠이 많아져서 열 시간 넘게 자고 3주에 한 번씩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때도 심리 관한 책만 빌려 읽더니 나연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본인에게 찾아온 우울증을 이겨내려 했었나 보다.
"왜 얘기 안 했어?"
"어떻게 얘기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얘기 꺼내기 어렵더라도 했었야지. 너 신상에 문제 생기면 엄마 아빠는 딸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한탄만 하고 있을 뻔했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장난스럽게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저녁을 먹는 식탁에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부모인 나는 뭘 했나 하는 자책이 드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