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싫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게 싫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날은 왜 만들어서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제사도 싫다. 제사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시댁 사람들은 제사가 습관인 듯하다. 제사음식을 차리지 않으면 허전하니까 상차림을 하는 것 같다.
남편은 사형제 중 셋째이다.
첫째와 막내는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했고 둘째는 비혼 상태이다. 결혼하고 몇 년은 며느리 셋이서 제사 음식을 했다. 어느 해 두 며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 혼자만 남아 여태껏 시댁에 가고 있다. 시댁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다.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혼하라는 투의 "쟤 집에 가라고 해"라는 말도 들었다. 시댁은 제사음식을 많이 해야 하는 곳이었다. 전을 두 바구니나 해야 했다. 두 며느리가 사라진 후 혼자 그 많은 음식을 했다. 하루종일 앉지도 못한 채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말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두 며느리가 시댁에 오지 않자 많은 음식들을 해대느라 몸살이 났다. 대자로 누워 있지도 못하고 구석진 곳에서 아픈 몸을 뉘었다. 그 누구도 "괜찮냐?" "많이 아프냐?" 걱정스럽게 물어주질 않았다. 아픈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찌나 서럽던지. 시댁의 이러한 일은 어떤 좋은 기억으로도 덮어지지 않았다. '쟤는 뭐 한 게 있다고 아프다고 하는 거야.' 하는 듯한 눈빛이 돌아왔다. 나에게 시댁은 그런 곳이다. 하루 종일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일만 해야 되는 곳이다. 어떤 때는 가사도우미가 된 듯한 기분에 우울하기까지 했다.
남편과 결혼하고 산지 이십사 년이나 됐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명절에는 꼭 시댁을 가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선택이다. 다른 사람들은 연휴라고 해외여행도 가고 놀러도 다니던데 그런 적 한 번도 없다. 올해 설 명절 연휴에 인천공항을 빠져나간 여행객이 사상 역대급으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뉴스를 봤다. 부럽다. 여행 안 가도 좋으니 시댁 가지 않고 쉬고 싶다. 편안하게. 의미도 없는 제사 같은 거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내게도 명절이라는 날이 시댁이라는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올까? 한 해 달력을 보며 명절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