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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설화 Apr 09. 2017

나는 페미니즘을 믿지 않는다 2

한국형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2. 페미니스트의 평등은 달라야 한다. 그게 아닌 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Mary Wollstonecraft in 1790–1, by John Opie



Rousseau exerts himself to prove that all was right originally: a crowd of authors that all is now right: and , that all will be right.

루소는 원래 모든 것이 괜찮았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작가는 지금이 괜찮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이 괜찮아 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 페미니즘이 성에 대한 평등을 주장한다면, 왜 젠더 이퀄리즘gender equalism이 아니라 '페미니즘feminism'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제는 너무나 식상해서 굳이 적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성평등을 바라는 페미니스트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페미니즘의 운동의 시초에 여성이 있었다는 것은 여성이 견딜 수 없는 차별을 받았다는 무시할 수 없는 반증이다. 즉, 성에 대한 평등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던 것은, 남성의 근거없는 차별 권력의 피해자였던 여성이었고, "여성도 남성처럼 이성적인 존재로서 평등하게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게 근대 페미니즘의 시초의 주축을 이룬 골자였다. 그런데 과연 이토록 당연한 문장을 왜 그처럼 긴 글을 통해서 매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철학자는 시도할 수 밖에 없었는 지, 잠시 현대 페미니즘의 목표를 논의하기 전, 근대의 페미니즘이 도래하기 전의 서양의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한 때, 강신주라는 강사는 동양철학은 여성혐오를 한다면서, 박사 과정에서 공자를 연구하기로 한 여성에게 "너 미쳤냐?" 라고 발언했다고 고백했다.



 http://blog.naver.com/pbeauvoir/220820802827



  한편, 서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강신주의 발언의 초점이 대단히 그릇된 것을 차치하고, -근대 중국에서 유교를 근거로 여성의 생활상을 억압해온 것은 기록된 사실이나, 그러나 모든 이념이 그렇듯이, 그것은 공자의 사상 자체가 가진 결함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사회의 책임이며, 남성이 여성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그가 "수준이 떨어진다"고 발언한 페미니즘의 최대 존재 의의가 될것이라는 것을 서양철학을 전공한 적 없는 "철학박사"는 모를 것이다.- 서양철학의 여성혐오는 무시하지 못할 만한 것이었다.


 우선, 여성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수적인 계산과 이성을 요구하는 작곡을 할 수 없고 (한슬리히), 여성은 유용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선호할 뿐더러, 생활비의 여분을 그들이 기꺼이 저축하는 이유는 단지 옷을 잘 차려입고 꾸미기 위해서이고, (칸트), 여성은 달콤하고, 매력적인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형성됐고, (존 밀튼) 여성은 순종적인 아내로서 남편의 눈에 아름다운 존재로서 드러나고,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장 자크 루소) 이 외에도, 오만과 편견에서 볼 수 있듯, 여성은 남성의 재산으로 취급을 당했기 때문에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했고, 추리소설의 대가이자 전통적인 여성상에 관심이 없던 아가사 크리스티는 글을 쓸 당시에 "어떻게 (감히) 여자가 글을 쓰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간단히 말해서, 전통 서양철학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 페미니스트의 노력 위에 선 현대 페미니스트에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이 문장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됐다. 오히려 그 문장 자체가 한 가지의 목표이자 정체성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과연 이 문장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현대 페미니스트는 명확하게 해체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이 매사에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거나, 모든 개인이 동등하게 처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평등에 관한 페미니즘의 이념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이러한 오해는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더 없는 딜레마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 왜 나는 짧은 머리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민낯을 드러내는 페미니스트와 같은 형태의 외형을 선호하지 못하는 가, 왜 나는 남성과 똑같은 무게의 맥주병을 들 수 없는 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대관절 무엇을 의미하는 가, 만일 내가 국제 경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세 살짜리 조카와 경제학 박사의 이야기에 동일하게 귀를 기울 일 수 없다면?-


 그러므로 이 장은, 성별 간 평등을 논의하는 페미니즘의 이념의 정체성과 의미를 현대의 상황에 맞게 재확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갖는다. 우선, 그 명칭이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모호한 의미를 지닌 한국형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페미니즘에 관해서 논의할 때, 한국의 남성들의 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한국형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서양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지 않은 데) 한국의 (못생기고, 뚱뚱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란 미명 하에 남성에 대한 폭력을 일삼는 것을 평등이라 착각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그들은 (감히) 남성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려고 한다. 그것은 평등이 아니라 사회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폭력적 사상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What but a pestilential vapour can hover over society when its chief director is only instructed in the invention of crimes, or the stupid routine of childish ceremonies? Will men ever be wise? -will they never cease to expect corn from tares, and figs from thistles? 


 오직 유치한 행사들이나 멍청하게 반복하고, 범죄나 개발하는 환경에서 주요한 감독관(남성)이 교육을 받는다면, 해로운 분위기 외에 또 어떤 것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겠는가? 

 과연 남성이 똑똑해지는 날이 올까?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기대하거나, 가라지에서 옥수수를 기대하는 것을 좀 관둘 수는 없는 것일까?-

 


(...) women cannot, by force, be confinedto domestic concerns; (...)
for, if women are notpermitted to enjoy legitimate rights, they will render bothmen and themselves vicious, to obtain illicit privileges.

누구도 가정에 의한 문제만 신경쓰도록 여성을 강제할 순 없다. 왜냐하면 만일 여성이 합당한 권리를 즐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비가시적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남성과 그 자신을 사악한 존재로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창녀를 찾을 때, 여성은 집안에서 애나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 *글쓴이 주)



 위에 제시된 문장은 한국의 남성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서양의", "합리적인" 페미니즘의 선구자, 매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대표작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보시다시피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 일반을 향한 경고와 욕설, 비난을 주저하지 않으며, 존 밀튼, 장자크 루소 등의 남성철학자를 예시로 그들에게 언어 폭격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히려 서프러제트(여성도 투표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무리) 문화가 존재했던 서양에서 페미니즘은 한국보다 먼저 남자들의 적이 되어왔다. 그만큼 호주나 미국, 영국 등지에도 페미니즘을 향한 차별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이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창작한 허구다, 라는 믿음은 동, 서양을 통틀어 공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 자체가 여성의 최종 목표는 남성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고, 여성의 존재 의의가 남성에 의해서 선택되야 마땅하는 전통적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 장에서 깊게 논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생각은 서양의 문학, 혹은 비문학 작품에도 여성 작가의 입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 종종 등장하는 데, "페미니스트는 예쁜 여자가 갖지 못한 것을 시샘하는 자들일 뿐이야." (샤프 오브젝트), "난 페미니즘 따위 안 믿어. 여자는 여성성을 이용할 줄 알아야지." (섹스 앤더 시티) 등이 그것이다.


 즉, 한국 남성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페미니즘은 그들의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남성들은 또 다시 한국의 페미니스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가짜 페미니즘'의 존재다. 


 대한민국에 페미니즘이 유례없이 발전하면서, 한국 남성들은 ‘서양의 페미니즘’과 ‘한국형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가짜 페미니즘’과 ‘진짜 페미니즘’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反페미니스트 남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감히 남성보다 우월해지고 싶어하고, 남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남성을 의미없이 공격한다. 그들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전혀 발전을 이루지 못한 어느 동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성을 근거로 갖는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를 설치해서 여성의 기회를 보장하고, 여성의 처우를 배려하고,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수년간 사회적 합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온- 노르웨이처럼 군대도 가지 않는 주제에 전쟁은 남성이 일으켰다고 말하며,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남성은 여성보다 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요컨대, 페미니즘은 평등을 논의하면서, 한 쪽 성별이 다른 쪽보다 우월해지는 것을 주장할 순 없다. 이는 아주 기초적이고, 간단하고, 논리적인 모순이다. 심지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면서, 보다 자비로운 목소리를 지닌 남성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래, 그동안 한국 여성들이 억압을 받은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억압을 남성에게 돌려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정녕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앞서 나는 평등과 동등은 동의어가 아님을 논증했다. 외려 평등이란 타인과 동일해지거나, 동등해질 것을 강요하는 사회의 기준에 저항을 하기 위한 역할을 맡는 개념이다. 당신과 나는 평등하기에, 나는 당신이 되지 않을 권리를 갖고, 당신은 내가 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페미니스트인 너는 무조건 평등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 머리 위에 서려고 하면 안된다." 라는 주장은 '평등'과 '동등'의 개념을 혼동한 기본적인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성별의 차원에서, 여성은 무조건 남성과 동등해질 필요가 없다면, 개인적 차원에서 여성인 개인은 당연히 남성인 개인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 여성에게 '무언가를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은 그 자체로 이미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고 있고, 바로 그러한 행위 자체가 현대에 페미니즘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기임을 보여주는 이유가 되는 것을, 오직 남성중심적 사회의 권력의 수혜자라는 이름의 가해자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반反페미니스트는 말한다. 당신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발상지와 다른 형태로 발전한, 왜곡된 페미니즘이다. 즉,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를 위한) 페미니즘은 필요하다. 그러나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건 아닌 것 같은) 당신의 페미니즘은 안 된다." 즉, 나에게 거슬리지 않으면 진짜고, 나에게 거슬리면 거짓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신봉하는 서양의 페미니즘의 선구자는 왕권과 군대, 해군, 성직자를 비롯한 일반 남성을 향한 경멸과 혐오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남성을 향해서 내뱉는 stupid멍청한, childish애같은, idiot우둔한, tyranny독재자, 등의 단어를 이용해서 남성에게 폭력적으로 저항한다. 심지어 그녀의 타겟은 '일부' 남성이 아니라 the weak, common man이다. 즉, 남성 일반을 향한 저항이었다. 오히려 최근의 페미니즘이 '일부' 남성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녀보다 한 단계 발전한 "진짜" 페미니즘적 정신 -남성의 심기를 거슬리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페미니스트는 자문해야 한다. 과연 근대의 페미니즘이 맞섰던 상황과 달리 이처럼 교묘하게 발전한 反페미니즘에 대항하기 위해서,현대의 페미니즘은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해야 하는가. 과연 남성을 설득하는 것과 여성의 분노를 해소하는 것 사이에 이상적인 답은 존재하는 가. 현대의 페미니즘이 처한 상황이 근대의 것과 달라졌다면, 그 정체성과 목표를 재확립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의 예로 들기 위해서 더없이 적절한 공간이 있다. 


 바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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