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베리 Mar 29. 2020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방법

부모님의 집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얼마 전에야 직접 느꼈다.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 피어나는 꽃, 따뜻한 공기까지. 봄은 오고 있었다. 일상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불안함은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만들었다. 신경은 곤두서서 근처에 사람이 다가올 때나 기침 소리가 들려올 때 주춤거리게 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내가 그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완전무장을 한 채 부모님의 집으로 갔는데 다른 세상 같았다. 바이러스 같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그동안 불안하고 또 답답했던 풍경이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에 한껏 젖어있다 와서 그런 걸까. 


부모님의 집은 오래된 주택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 지금까지 이사를 가본 적이 없다. 넓지 않지만, 화분을 늘어놓고 화단에 상추와 토마토를 조금씩 심어도 될 만큼의 마당이 있다. 봄이면 씨앗을 심고 아빠가 제2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뒤로 가면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어갈 정도의 틈이 있는데 장마철이면 그곳의 이끼를 엄마와 박박 닦아내고는 했다. 아, 여름에는 자라난 상추를 먹느라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을 사왔다. 가을, 그리고 겨울에는 낙엽을 쓰는데 주말 오전을 보냈다. 물론, 엄마가 먼저 나가 쓸고 있으면 나와 동생은 집 안 청소를 하고 아빠는 식사를 준비했다. 화목하고 낭만적인 풍경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주말에 아빠는 끼니를 거르면 어떻게 될 것 같은 사람처럼 요리하는 데 심지어 메뉴도 매번 다르다. 시장도 자주 가고, 계절마다 혹은 때마다 먹고 싶은 것이 다르다. 


안팎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부모님을 보다 보면 20대 즈음부터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못한 내가 이해된다. 또, 앞으로의 내 건강 상태도 (유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는 가정하에) 예측할 수 있고. 요즘 부모님 댁에 들를 때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하루 운세를 보거나 점을 보러 가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게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살아가는 모양은 다르겠지만 어떤 에너지나 생각하는 과정은 비슷할 수 있으니까. 


일주일 가까이 바이러스니 뭐니 모르는 세상에 살다 와서인지 살만하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분이 쉽게 날아가기 전에 정리하기로 했다. 아주 두꺼운 옷은 집어넣고 가벼운 옷을 꺼냈다. 며칠 전 야심 차게 주문한 리빙박스를 펼쳐보았는데 문제다.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리빙박스 사이즈를 제대로 보지 않고 주문한 내가 문제다. 이걸 어떻게 보관하지. 정말 내가 문제야. 




그날의 콘텐츠

- 넷플릭스 / 영화 <머니 볼>

- 왓챠 /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이 글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하나, 특정 인물 및 상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 상상력을 동원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나를 책임지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