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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24. 2022

요리하고 싶던 나에게

하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여행 중 격렬하게 요리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간단한 샐러드나 먹고 싶지 않은 파스타를 만들고 싶었다. 장을 보며 재료를 고르고 두 손 무겁게 숙소로 가 요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한국에 와 마음대로 장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 살 때 이사 온 이 집 주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다. 절정으로 향한 건 스타벅스가 생긴 직후였다. 걸어서 1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스타벅스가 생겨 줌 수업을 받다가 쉬는 시간에 커피를 사 온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커피가 먹고 싶지 않았다. 주방 곳곳을 뒤적이다 찾아낸 도구,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이 맛이지, 이 맛이야!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얼른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피가 쏠리는 불편함이 버겁게 느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고, 두세 가지의 과일을 썰어 소스에 후추를 뿌려 먹었다. 무엇보다 내가 애써 냉장고를 채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이 행복이 가시기 전에 알차게 써먹자 싶어서 어떤 날은 라면도 끓여 먹고, 오늘은 비빔냉면을 해 먹었다. 


요리를 안 하고 살아야지, 생각했을 때도 본 게 많은 덕분에 나는 가지가지했다. 귀찮다면서 항상 그릇에 요리와 반찬을 덜어먹었고 (배달음식도 그릇에 담아먹음;)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면요리에도 고명을 얹는다. 분명히 귀찮아하면서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워낙 오랜 시간 그런 풍경을 봐와서 그런 것 같다. 엄마가 요리하는 건 고통스럽게 보였지만 동시에 아빠의 요리는 항상 신나 보인다. 신중하게 고르고 만들면서도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아 보기에 쉬워 보였다. 고통과 즐거움을 동시에 지켜봤기에 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하고 나면 낫다, 는 걸 몸소 배웠나 싶다. 


그런데 이쯤 해 먹어 보니 배달음식 먹고 싶다. 여행 중 적었던 리스트를 가족에게 공개할 때가 된 것 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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