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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Apr 15. 2020

엄마의 외출

점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휴일 아침, 엄마가 바삐 목욕을 하고 김치를 조금 챙겨 나갔다. 전날 넷플릭스를 보다가 새벽 3시 넘어서 잠든 나는 그 덕분에 조용한 아침을 맞이했다. 천천히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하고 밥을 챙겨먹었다. 그래도 오전이라니! 행복감에 젖어 커피를 내렸다. 한창 커피를 마시다보니 엄마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힘차게 나갔던 모습과는 달라 웃음이 났다.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주방에서 물 한잔을 들이켰다. 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보다. 요즘 지인과 친구에게 자식 결혼할 때 되지 않았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엄마. 당사자들(나와 동생)의 상황 및 의지와는 상관없이 올해, 내년에 하나씩 보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점쟁이 선생님(이하 점 선생님)을 마주하자마자 엄마의 모든 계획이 다 무너졌다.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 자식들 1 ~ 2년 안에 다 결혼한다.


- 자식 모두 회사에 오래 다닌다.


- 외할머니 좋은 때 가신다.




하지만 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들은 말은 이렇다.


- (앉자마자) 자식들 결혼시키려고 하지마, 그 친구들 결혼을 한다고 해도 3 ~ 4년 후에나 할거야


- 우리때랑 달라. 특히 딸(나)은 어디에 소속되는 것보다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밥벌이 충분히 할거야. 아들은 지금 직장에서는 2년 정도 있으려나? 다음이 보이기는 하는데 어딘가 소속되어있는 걸 좋아해서 잘 갈거야. 나중에 외국 또 갈거같아(일본에서 1년 살았었음)


- (할머니 사진을 본 점 선생님) 90넘어도 어두운 기운 하나 없는 사람은 오랜만이네. 102살까지 사실 거 같아




엄마 이야기를 듣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가끔 너무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나 점 선생님을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엄마는 머릿 속에 너무 복잡하다고 했다. 복잡할 게 하나도 없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은 그대로 인정하고,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 서로 지켜보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너무 좋지 않나. 물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 말이다. 당장 엄마에게 건내기에는 도움이 안되는 말이라 그저 엄마를 놀리며(?) 받아치기만 했다. 




이것저것 하며 내 밥벌이 충분히 하다가 힘들면 쉴 수 있는 곳 있고, 도움주는 지인과 친구들이 있어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엄마는 당분간 점 선생님에게 가지 않을 것 같다. 이것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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