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주방에서 물 한잔을 들이켰다. 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보다. 요즘 지인과 친구에게 자식 결혼할 때 되지 않았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엄마. 당사자들(나와 동생)의 상황 및 의지와는 상관없이 올해, 내년에 하나씩 보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점쟁이 선생님(이하 점 선생님)을 마주하자마자 엄마의 모든 계획이 다 무너졌다.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 자식들 1 ~ 2년 안에 다 결혼한다.
- 자식 모두 회사에 오래 다닌다.
- 외할머니 좋은 때 가신다.
하지만 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들은 말은 이렇다.
- (앉자마자) 자식들 결혼시키려고 하지마, 그 친구들 결혼을 한다고 해도 3 ~ 4년 후에나 할거야
- 우리때랑 달라. 특히 딸(나)은 어디에 소속되는 것보다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밥벌이 충분히 할거야. 아들은 지금 직장에서는 2년 정도 있으려나? 다음이 보이기는 하는데 어딘가 소속되어있는 걸 좋아해서 잘 갈거야. 나중에 외국 또 갈거같아(일본에서 1년 살았었음)
- (할머니 사진을 본 점 선생님) 90넘어도 어두운 기운 하나 없는 사람은 오랜만이네. 102살까지 사실 거 같아
엄마 이야기를 듣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가끔 너무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나 점 선생님을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엄마는 머릿 속에 너무 복잡하다고 했다. 복잡할 게 하나도 없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은 그대로 인정하고,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 서로 지켜보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너무 좋지 않나. 물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 말이다. 당장 엄마에게 건내기에는 도움이 안되는 말이라 그저 엄마를 놀리며(?) 받아치기만 했다.
이것저것 하며 내 밥벌이 충분히 하다가 힘들면 쉴 수 있는 곳 있고, 도움주는 지인과 친구들이 있어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엄마는 당분간 점 선생님에게 가지 않을 것 같다. 이것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