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를 위한 글쓰기

쓰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by 피베리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 학기제로 진행하는 이 모임을 두 학기째 참여하고 있다. 지난 학기는 여행, 혹은 생각나는 글감을 위주로 썼다. 이번 학기 주제는 ‘아빠’다. 나는 오랜 시간 아빠를 미워하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썼다. 꽤 정성스럽고 촘촘하게 미워해서 어느 지점이 되자 이 사람을 사랑해서 미워하는지 그저 화를 내고 있는 것뿐인지 구분할 수 없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함께 살게 된 기념(?)으로 그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전에도 종종 아빠와의 에피소드를 글로 남긴 적이 있다. 하지만 항상 화가 나거나 뭔가 풀리지 않은 깊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글 자체를 길게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아빠와 연결된 지점을 분명히 바라보기엔 감정이 앞섰다. 그래서 도대체 나는 왜 그에게 이런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에 대할 때 드러나던 뾰족함이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아빠란 사람이 언제부터 한 풀 꺾였는지에 대해 문득 떠올렸다. 대충 초안을 짤막하게 써두었다. 다 읽은 책 필타를 하고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를 한 편 볼 생각이었다. 필타를 하고 나자 문득 메모해 둔 글이 생각나 켰고, 한참 쓰다 보니 A4 용지 네 쪽의 분량이 나왔다. 시간은 이미 10시를 훌쩍 넘어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잠을 잘까, 영화를 볼까 했지만 잠을 택했다. 근육통을 안고 있는 몸을 더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가 모르는 그의 연대기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글이었고, 오롯이 나를 위한 거였다. 아마 다 쓴 글을 그에게 보일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기회가 있더라도 글쎄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직 상상해볼 수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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