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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Sep 01. 2022

기억은 참 굉장하고 또 씁쓸한 것

이 글 속의 금쪽이는 아빠랍니다

나는 아빠라는 역할을 한 내 인생 첫 어른을 무서워했다. 그러다 미워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뒤섞여 도무지 모르겠을 때 글을 쓴다. 그를 구성하는 요소를 내 식대로 펼쳐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넘친다거나 딱히 더 미워하는 건 아니다. 난 내가 이해한 모습 자체로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전에 자리 잡은 금쪽의 큰 누나를 통해 군 제대 직후 금쪽이는 대전으로 향했다. 회사에 다니며 받은 월급은 금쪽의 큰 누나가 모조리 적금에 부었다. 도시에서 일했지만 제대로 돈을 써보지 못하던 금쪽이는 정규 근로 시간 이후 잔업을 하며 용돈벌이를 했다. 담배, 술, 친구들과의 여행 등 그동안 못해본 것을 했다. 그러던 중 결혼하게 되었고 금쪽이는 큰 누나에게서 독립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일찍 남편과 사별한 큰 누나가 돈을 벌러 나간 사이 그의 자식과 집안을 돌본 건 금쪽의 아내였다.



금쪽이는 회사를 나와 공장을 차렸다. 그 공장은 금쪽의 둘째 누나가 땅을 맡겨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공장은 문을 열지 않고서는 안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이 세워졌다. 마침내 큰 누나에게서 벗어난 금쪽이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일뿐 아니라 잦은 모임을 했다. 금쪽이는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제대로 몰랐다.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놀러 나가기 바빴다. 가끔 생일이나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외식을 하라며 돈을 쥐여주고 나갔다. 아마 금쪽의 아내가 그런 순간마다 금쪽이를 붙잡고 화내고 울고불고하며 겨우 이어가던 생활까지 포기했다면 나와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금쪽의 아내는 금쪽의 부재와 상관없이 우리의 일상을 이어 나갔다. 어린이날이면 돗자리를 들고 집 앞 대학교로, 시장 입구에 생긴 롯데리아로, 백화점 안 서점으로 향했다. 우리는 금쪽의 아내와 동네를 벗어나는 것만으로 특별한 날임을 알았다. 두 손 가득 풍선과 장난감을 든 아이들을 시기하지 않았던 건 금쪽의 아내와 금쪽의 빈자리를 채운 그의 친구들 덕분이었다. 금쪽의 아내는 친구들에게 매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며 야유를 들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가 기억하는 건 금쪽의 아내와 친구들이 별것 아닌 이야기로 환하게 웃던 모습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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