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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Sep 09. 2022

명절보다 연휴

화내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기억하지 못할 때부터 명절이면 첫날부터 어김없이 큰집으로 향했다. 그땐 막히면 10시간은 족히 걸리던 때다. 얇고 큰 책을 읽다가 잠들어서 눈을 떴다가 감고, 또 떠도 깜깜했던 찰나가 기억난다. 그렇게 겨우 도착해 밥 먹고 나면 또 외갓집으로 향한다. 도착하면 또 저녁을 겨우 먹거나 아니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엄마에겐 시가였지만 내게 그 공간 자체가 괜찮았던 건 아빠가 바로 큰집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도로가 발전하고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을 때, 아빠는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고 갔다. 그래서

어떤 명절엔 일부러 한낮에 도착해 자갈치 시장이나 근처 해수욕장, 산책로 등을 탐방하다 갔다. 그러니 기억이 많아지던 때부터 여행의 개념이 스며들었다.


더불어 친척 언니, 오빠들의 존재가 이 분위기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양가 모두 못해도 열댓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중간 혹은 막내 라인의 리더쯤이었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나가 바다를 구경하고, 동네 오두막이나 작은 슈퍼에 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쩌다 서로 만나지 못하면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달랐다.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성의를 보이냐 마냐로 팽팽했다. 여성에게 집중된 가사노동,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꼭 시가 쪽에 먼저 가야 하는 행태 등 이런 풍경이 보일 즈음부터 가족의 개념을 애써 재정립했다.


내게 가족은 종종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어색하지 않고, 관심사가 업데이트되기도 하며 드나드는데 반가움이 먼저 앞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가족이 누구고 혹 어디까지냐, 하고 묻는다면 현재 나와 동거하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동생, 그리고 이모들 정도다. 무엇보다 이모들은 내가 모른척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엄마의 마음과 상황을 알아준다. 경사보다 특히 조사에서 그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이제 꼬박 2박 3일을 이동하는데 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연휴를 맞이한다. 마침내 나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연휴를 설레 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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