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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Oct 30. 2022

10월 4주차 #몰입 #한계 #사유

돈의 힘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래서 플래시백 장면에서 “사람들의 배를 가르면 돈벌레가 나올 거”라는 대사를 할 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자식이 있는데도 돈 때문에 목숨을 끊는 엄마를 보면서, 지독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로 웃기다고 느끼는 상태가 되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손에 수류탄을 쥐고 뛰쳐들어온 인주는 정말 용감무쌍 그 자체인 자기만의 심지를 밀어붙어야 했고, 박재상(엄기준)의 죽음 이후에 폭주를 시작한 상아 역시 온전히 자기 감정에 몰입해서 약간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어야 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원상아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는 화영은 자기 혼자 죽는 건 상관없지만 인주가 다칠 것을 걱정할 테니 인주의 등장 이후로 많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신은 어떻게 보면 세명의 여자가 한자리에 있지만 자기만의 마침표를 찍고 있던 순간이기도 한 것 같다.


연기력 논란이나 혹평 여론이 그다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처럼 철저하게 자기 평가를 했던 이유가 있나. 스스로 아쉽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되돌려보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 하기 싫어도 해야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웃음) 어떻게든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봤다. 중국은 거의 대부분 후시녹음으로 대사를 처리한다. 그러니 따지고보면 카메라 앞에서 100% 육성으로 연기하는 게 10년 만인 셈이다. 10년을 쉬었으니 내 발음과 발성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그러다 <가족입니다>를 만났다.


<작은 아씨들>을 예로 들자면, 비밀정원 3자 대면 신에서 대치 중인 세 여자의 바스트숏이 반복될 때 ‘이거 누아르에서 남자들이 대결할 때 나오는 구도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심 짜릿하더라.


<그린마더스클럽> 역시 전형적인 입시 드라마를 뛰어넘는 여성들 간의 우정과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다.

=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입장에서 시작하지만 이들이 여성으로서 각자의 인생을 발견하는 여정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여자들끼리 우정을 쌓으면서 상처주고 상처받는 구도도 좋았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고 각자의 생애 주기가 달라짐에 따라 우정을 지키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걸 내 인생에서도 배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했다.


지금 이 시점에, 현재의 나이를 통과하면서 전보다 좀 더 관심 가는 배역이 있나.

= 악역을 어느새 빌런이라 부르는 시대의 변화도 흥미롭다. 배우로서 바람이 있다면 정말 제대로, 빌런이 되어보고 싶다. 마냥 세고 강한 모습보다는 미묘한 디테일을 잘 살려보고 싶다. 이왕 할 거 아주 산뜻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좋은 때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기회가 언제 올진 모르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관록이 쌓인 빌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굳이 서두르고 싶진 않다.


커리어의 분기점들이 자연스럽게 나이대별로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과도 잘 맞물린다는 인상이다.

= 나도 이제 어느새 40대에 접어들고 나니 그동안 경험해 온 인생의 굴곡을 연기에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웃음) 옛날에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었지만, 이제는 그저 웃고 있어도 슬프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인생을 살면서 축적된 것들이 배우로서 어떤 표정을 쓰면 좋을지 고민할 때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표현의 숫자가 점점 더 소수점으로 쪼개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심약한 사람의 전전긍긍이기보단 도리어 자긍심 가진 사람의 부담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역할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쉬는 순간은 언제인가.

= 음, 언제나? 긴장하며 일하는 시간과 나를 풀어놓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어쩌면 내가 버텨내는 힘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일할 때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믿고 내 찌질한 모습이나 창피한 얘기, 걱정거리를 투명하게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진짜 멋있는 태도 같다. 내 허점도, 내 칭찬도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웃음)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무조건 혼자 해내려고 애썼던 20대를 거치면서 문득 생각했었다. ‘너 참 외로운 애였구나.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법을 몰라서 그저 혼자 잘하려고 했구나.’


지금 추자현이 가진 담력은 주변의 든든한 울타리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겠다.

= 그런가. 적절한 타이밍에 내게 필요한 것을 먼저 말하는 용기를 계속 부려보려 한다. 도움을 청하고 받으면서, 설혹 이번엔 부족했어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고 결국엔 나를 믿어보고 싶다.

[인터뷰] '작은 아씨들' 배우 추자현(링크1 / 링크2)


일자리가 극도로 줄어드는 시대에 한편 어느 곳에선 야근을 하고, 과로를 하던 노동자가 죽습니다. AI 최첨단 효율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먹고 싶은 것을 주문조차 못하고 삶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은 늘어납니다.

이런 모순덩어리인 상황 속에 정확한 현실을 보기 위해서는 어쩌면 한걸음 멀리 떨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많은 효율성들은 누구의 효율성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상 이 대단한 4차 산업혁명 시대 높은 효율성의 주역은 기계의 진화라기보다는 인간의 진화(혹은 도태)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키오스크, 누구의 '효율성'일까? [10월의 김스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숟가락 젓가락질 정도만 알려주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랑 밥 먹으면서 눈치껏 배우잖아요. 그런데 말은요, 하루에 세 번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밥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하잖아요. 그리고 밥 먹는 걸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그런데 그냥 눈치껏 배우는 거예요. 눈치껏 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어떤 사람은 눈치가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없고, 주변에 좋은 본보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워요.


<아침마당>을 진행하면서 엄앵란 선생님을 벤치마킹한 것 같아요. 선생님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혜를 말씀해주시는 분인데, 한 번은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침에 생방송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늘 공원에 가셔서 연못을 보면서 "아이고, 네가 뭔데 그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했냐, 그래도 애썼다, 그 사람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신대요. 그 말씀을 듣고 참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방송이 끝나면 항상 손을 씻으면서 그날 방송을 생각해 보고 정리했어요. 굳이 담아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그런 식으로 씻어냈던 것 같아요.


제가 꼭 후배들을 생각해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일하는 게 좋고 재밌기 때문에 하는 거지만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잖아요. 서로를 보면서 나를 보는 것이기도 하니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윤여정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에게 그런 영감을 받았고요. 작고하신 송해 선생님처럼 저도 90대까지 방송을 하고 싶어요.


삶의 경험이 쌓이면 누군가 오고 또 가는 것도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걸까요?

= 아니요, 힘들어요.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그 말 덕분에 덜 아프게 되더라고요.

너와 내가 각자의 궤도를 돌다가 주기가 맞으면 또 만나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이금희 "말하기, 눈치껏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지금 내 삶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까? 하고 싶은 걸 해보니 재밌지 않니?

작가 백가희


디지털 시대의 좋은 독자는 '지구인답게' 읽는 독자입니다. 공동체와 공공성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는 뜻입니다. 읽는 일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내가 잘 읽으면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잘 읽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면 우리 사회가 어떤 중대한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조병영


Success isn't linear

Yoann Bourgeois


남의 목숨이 싼 것도 내 목숨이 싼 것도 싫다. 이 흡혈의 세상이 지긋지긋하다. 누구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모두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흡혈의 세상


"애도란 상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상실이 의미하는 것과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지점으로부터 앞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면, 어떻게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하고, 우리의 관계들을 새롭게 해야 하는지를 잘 인식하게 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진실한 애도는 멸종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저 무수히 많은 존재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과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자각 속으로 우리를 향하게 해야 한다." 애도는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고, 산 자들의 존재가 죽은 자들의 존재에 빚지고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헤어웨이, 공-산의 사유> 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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