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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Aug 15. 2020

떠나온 그 날에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 : 다시 시작하기

마지막 날.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캐리어에 꾸역꾸역 넣은 각종 주머니, 박스에 짐을 켜켜이 담아 쌓아 올렸다. 버려야 할 것들 중 큰 건 미리 스티커를 부착해 내놨고 정리할 다른 것이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불까지 넣고 나니 이런 곳에 어떻게 살았나 싶을 만큼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어떻게든 사람처럼 살아보고자 했는데 그게 참 어려웠구나 싶다. 


창문을 열자 텅 빈 공간에는 매미 소리로 가득 찼다.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땀나는 아침이었다. 1층 현관 앞에 모든 짐을 내려두었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오시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부모님이 얼마나 왔는지 파악하며 마지막 남은 짐까지 옮겼다. 생각보다 일찍 다 옮겨놨고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부모님이 도착한 후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트럭에 짐을 모두 옮겼다. 고민한 시간에 비해 20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셋이 트럭에 나란히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흐려지다가 비가 올 때 즈음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집 뒤편에 짐을 들여놓았고 정리를 시작했다. 끝없어 보이는 정리. 세탁기를 몇 번이나 돌렸더라, 중간에 세탁기가 한 번 멈추기도 했다. 6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몸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모르겠고, 제대로 잠드는 것도 힘들었다. 높은 습도와 피로, 긴장이 풀리며 한껏 예민해진 몸을 침대에 눕혔지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사의 여운은 2~3일 계속되었다.


다음 날,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겨우 일했고 틈나는 대로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얼른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부모님 댁으로 들어온 것이 한두 번도 아닌 데다가 그동안 계속 머물렀으니 이사가 크게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겨우 하루 만에.



금주의 콘텐츠 

·영화 <스탠바이, 웬디>

길 몇 번 건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그걸 망설였을까. 조금 돌아가고 자주 헤매더라도 그런 나를 내가 단단히 지켜보아야 한다.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평생.


·영화 <궁> (주동우 출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달달하게 웃는 배우 주동우 때문에 보는 것. 이 배우가 극 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맑게 사는 작품이 더 많았으면!


* 콘텐츠 추천은 @pberry_watchlog

빌라선샤인 뉴먼소셜클럽 글쓰는 페미니스트 시즌 2 첫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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