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다른 실패를 해보려고요
수능을 앞둔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수험생인 우리에게 대대적인 교실 청소를 주문했다. 책상을 한쪽으로 다 밀고 나서 기름걸레로 나무 바닥이 반짝이도록 닦은 기억이 선명하다. 그 기름걸레의 질감마저. 담임 선생님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는 이 기억으로 완성된다.
당시, 그가 영 미덥지 않았던 탓에 대학 원서를 쓰는 기간 중 혼자 알아봤다. 내 성적은 내가 잘 아니까, 그에 맞는 자리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달은 직후 울고불고하며 인정하는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반 친구들이 한숨 푹푹 쉬며 신중히 원서를 쓰는 동안 딱 세 곳을 선정해 나만의 리그를 마무리했다.
세 곳 중 딱 한 곳에 붙었는데 전공은 불어불문학과라고 쓰여 있었다. 면접 일주일 전, 기초 프랑스어 책을 샀다. 인사, 자기소개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두껍지 않았던 책의 앞부분 몇 페이지의 종이만 까매졌다.
면접이 마무리되며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멀뚱멀뚱 바라보다 뇌리를 스친 불어 한 마디를 소리 내어 말했다.
ㅂ.. 봉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