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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20. 2024

a 이야기

a에게서 전화가 왔다. a와 나는 모임을 같이할 뿐 셩격이나 성향은 많이 달라 조금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이고 어쩌면 a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상대적이고 마음이나 정서의 교감 같은 건 쌍방향일 수밖에 없다 보니 내가 그를 어려워하면 그도 나를 어려워하고, 그가 나를 불편해하면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를 불편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a는 식당을 운영한다. 주메뉴는 육개장이다. a는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장사가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해서 나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그의 식당을 찾았다. 우리 집 또한 작게나마 사업을 하는데 매출이 너무 떨어져 특단의 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a의 사정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탓이 컸다. a는 어느 날 육개장 값을 싸게 받으니 어디서 받아서 파는 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의심한다며 육개장 값을 올리겠다고 하더니 결정한 대로 값을 올렸다. 값을 올린 게 득이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이후에도 a는 장사가 안된다고 걱정을 했다.


볼일을 보고 집에 가다가 a의 식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집은 다들 바빠서 아침은 잘 안 먹고 점심과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씩 밥을 해 두기도 하고 가끔 국이나 찌개를 끓여두기도 한다. 국이나 찌개는 결국 내 몫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a의 식당에 들러 육개장 2인분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a는 아는 언니네 가서 20-30분쯤 있다가 올 거라며 20-30분 후에 다시 오라고 a의 남편이 말했다. 나는 다시 가기는 좀 그래서 다음에 다시 들르겠다고 하고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내가 맛있는 육개장을 사드리겠다고 하며 지인의 소매를 붙들고 굳이 a의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a가 병원에 갔단다. 육개장을 사주겠다고 지인을 끌고 간 참이라 그냥 사장님이 파시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못하고 4시 이후에나 음식을 팔 수 있단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프다는 데에야 달리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대로 식당을 나와 인근에서 밥을 먹었다.


얼마 후 a와 나는 모임에서 만났고, 나는 a에게 말했다.

"선생님, 참 힘드시겠어요. 제가 두어 번 식당에 갔었는데 선생님이 안 계시다고 바깥분이 밥을 안 팔아요" a가 화를 냈다. 왜 선을 넘느냐며. 나는 곧바로 사과를 했다. 나는 생색을 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나쁜 뜻이 있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a라면 남편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그 마음을 표현한 건데..  장사라는 게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워도 손님을 맞을 수 있어야 손님도 늘고 단골도 생길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는 거듭거듭 사과를 했다.


a말로는 남편분이 기준이 뚜렷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 기준이란 게 알고 보니 음식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른 건데 자신이 하면 그 맛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너무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a가 덧붙이기를 사실은 그거 때문에 많이도 싸웠다고 했다. 준비해 둔 육수에 준비해 둔 삶은 파, 숙주, 삶아 익혀 찢어둔 고기 등등을 넣어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별거 아닌 거 갖고도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a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이해가 되었고 어쩐지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떠올랐다.물론 경우는 다르지만.  아버지가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면 엄마는 나무를 길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에 모임에 나온 몇몇과 밥을 먹으러 가기로 해놓고도 마음이 참 착잡했다. 그 식당엘 가는 게 너무나 껄끄럽게 느껴졌다. 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으나 나는 a의 속을 상하게 했고 내가 내 생각대로 이야기를 하는 우를 범했음에 사과를 했음에도 마음속으로 내 속도 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안 간다고 하기도 뭣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식당엘 갔다. 밥을 먹는데 a가 내 앞에 자리를 잡더니 말했다. 이제는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비율대로 넣기만 하면 되니까 남편이 육개장을 끓여서 팔기로 했다고. 나는 속으로 혼자서 안도했다.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냐고 묻자 내가 사는 아파트 앞 상가에 빈 점포가 있는데 식당을 거기로 옮길지 말지 고민 중이란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물었어도 내가 어떻게 대답을 했어도 내 생각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a에게는 더 성의껏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만 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꾸 우리 아파트 앞 상가 빈 점포를 기웃거리고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모쪼록 a가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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