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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Oct 10. 2024

복자씨의 별사탕

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3

트럭이 거칠게 달고 온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트럭의 꽁무니를 따라온 먼지 구름을 보았는지 은수의 할머니가 은석이네 마당으로 들어오며 "이사 오셨소?" 하고 이사 온 사람들을 찾는다.


할머니는 궁금함이 앞어 집에도 들르지 않고 온 둣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얇게 가른 대나무 줄기로 짠 대나무 소쿠리는 곰팡이에 좀이 먹어 들어가 여기저기가 거무튀튀한 데다 두어 뼘쯤 테가 빠져있는 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탉한테 쫓기고 쪼여 목덜미 군데군데 털이 빠진 연순이네 암탉처럼 볼품이 없다.


할머니는 채마밭을 소중히 여기었다.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사이사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아오는 삵으로 일 년을 살아내야 하는 시골농촌이다 보니 - 봄에서 가을까지라고 해도 실상 여름도 손을 놓는 날들이 더 많다 - 가진 논이나 밭이 많지 않은 이상 풍족한 생활을 꾸리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은수네는 할어버지가 앓아누운 지 몇 해가 지났고, 은수 삼 남매에 삼촌 둘과 고모 둘까지 모두가 함께 살았다 보니 먹고사는 일이 여간 고되고 힘에 부친게 아니었다. 그나마 인근 도시에 유학해 학교를 다니는 삼촌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니 삼촌과 고모들이 직장과 결혼 등으로 출가해 나감으로써 조금 허리를 펴고 한시름 놓았다고 엄마는 이웃집 꼬부랑 할머니에게 하소연하곤 했었다.


식솔이 많은 집에 작으나마 채마밭이 있다는 건 이웃들에게 부러움이 되었다. 할머니는 채마밭고랑을 손바닥만큼씩 쪼개어 오이며 가지, 고추, 무, 토란 등을 심었고, 상추며 근대, 아욱 같은 푸성귀와 함께 식구들이 먹을 건건이를 충당함으로써 실제로 돈을 살 노동력이라고는 은수 엄마와 아빠가 다인 집에 큰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걸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할머니는 은석이네 집을 둘러보며 새삼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할머니는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동무의 부재를 실감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 둘도 없는 동무였던 꼬부랑 할머니가 탱자나무집을 떠나 서울 아들네를 따라간다고 했을 때 은수의 할머니는 물론 동네사람들 모두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열여섯에 시집와 평생을 사신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서울 가서 어떻게 사시겠느냐고 꼬부랑할머니를 말렸지만 할머니는 혼자 사는 엄니를 걱정하는 효자, 효부 덕에 서울서도 살아보게 생겼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웃곤 하였다.


꼬부랑 할머니는 허리가 거의 낫처럼 굽었을지언정 앓거나 거동을 못하는 일은 없었다. 불편할 뿐 아픈데 하나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니는 읍내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논두렁에서 캐다 말려둔 쑥으로 떡을 해서 내다 팔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울 가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큰 아들 내외가 할머니를 모셔가려는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논 대여섯 마지기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중에 그나마 남아있는 집을 팔아 부동산 투기에 쏟아부우려는 속셈이라고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꼬부랑 할머니는 은수의 할머니를 붙들고 한없이 서럽게 우셨다고 했다. 꼬부랑 할머니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부음이 들렸다. 겨울이 채 가기도 전이었다.


은석이의 엄마가 할머니를 보고 달려와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식구가 몇이냐 묻고, 문틀이 틀어져 아귀가 맞지 않아 엉성하게 닫힌 방문과 굴뚝을 싸고 있는 흙 한편이 무너져 있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집이 한동안 비어 있어서 많이 상했을 텐데.. 어째 이사부터 했냐고 걱정을 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둘 더 있는데 애들 아버지가 애들을 전학시키고 학교가 끝나면 데리고 올 거라면서 "집은 살면서 차차 고쳐야겠지요.." 하며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는 은석이의 얼룩지고 꾀죄죄한 모습을 보더니-은석이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참았던 눈물이 났는지 볼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니는 이름이 뭐꼬?" 하고 물었다. 은석이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하자 은석이의 엄마가 박은석이라고 말해주었다.


"은수야, 니보다 어린갑다. 잘 데리고 놀거라" 할머니는 은석이와 은수를 번갈아 보며 말씀하셨다.

"은수야, 가자. 아가, 니도 따라오니라. 할미네 가서 물이라도 한 바가지 마시자"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석이를 앞세웠다. 은수는 늘 막둥이였고 할머니의 가장 귀여운 손주였거늘 할머니가 은석에게 아가라고 부를 때, 그리고 은석이를 잘 데리고 놀라고 할 때  은수는 뭔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얼떨떨해하며 그저 멀찍이서 은석이와 할머니의 뒤를 멀뚱멀뚱 따라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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